늦더위 속 6시간 동안 수거 작업 계속…거제시·소방서, 사랑의 집짓기로 연결

45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룬 장목면의 작은 섬 이수도. 가족에게 외면당한 채 정신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이칠상씨가 외로이 살고 있는 곳이다. 지난 7월25일 수집증을 앓고 있던 그의 집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작은 불꽃으로 시작된 화재는 집안 곳곳에 쌓아놓은 쓰레기 더미에 옮겨 붙으면서 순식간에 집 전체를 불태웠다.
"아침밥을 해먹으려 전기를 만지다 실수로 불이 난 것 같아. 다행히 근처 주민이 발견해서 이장에게 연락을 했고 이장의 방송을 듣고 모인 주민들이 힘을 합쳐 초기에 불길을 끌 수 있었지. 그 후에 해경과 119 소방대원이 도착해서 정리를 했다"며 동네 어르신은 화재 당시를 회상했다.
화재 후 줄곧 그를 보살피고 있는 재건이수도교회 박선애 전도사는 "LPG가스통에 불이라도 옮겨 붙어 폭발이라도 일어났다면 더 큰 화재로 번졌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 전도사가 전한 이씨의 사연은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10년 전만해도 이씨는 마산까지 가서 구입해 온 소라껍데기로 작품을 만들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팔 정도로 손재주가 좋았다. 그러나 장사도 점점 예전만 못해지고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자 수집증세를 보이며 동네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모아 집안에 쌓아 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박 전도사는 "장사를 했던 사람이라 아마도 그득히 물건을 쌓아 놓으며 심리적으로 위안을 삼았을 거야. 그러다 자기만의 보물창고가 순식간에 불타 없어지니 가슴이 먹먹했던지 늦은 저녁까지 검게 그을린 얼굴로 불탄 집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더라고. 하도 걱정이 돼서 가족들에게 연락을 했지만 되레 우리에게 화를 내더군. 왜 다 타게 내버려두지 않았느냐고. 그 말을 듣는데 왜 그리 가슴이 먹먹하던지…"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췄다.
이씨의 가슴 아픈 사연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온정의 손길이 모아졌다.
거제시자원봉사센터(회장 권선이) 서나리 팀장은 "지난달 초 현장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 이씨는 화재로 반파되고 물과 전기가 끊긴 쓰레기더미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며 "인근 교회로 이주할 것을 권했지만 완강히 거부하는 이씨를 보고 시급히 화재현장을 복구해 잠이라도 편히 잘 수 있게 도와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거제시자원봉사센터는 대우해양자원봉사단(단장 김영해)에 도움을 요청했다. 뜻을 모은 봉사단원 50여명은 한 달 이상 방치됐던 화재 현장을 복구하기 위해 이날 이수도를 찾았다.

이수도에 도착한 봉사단원들은 방을 가득 메우고 있던 타다 만 쓰레기를 수거하고, 새집을 지을 터를 마련하기 위해 지붕을 해체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주변에서 주워 모은 갖가지 쓰레기가 썩어 손이 닿는 곳마다 악취가 진동했다. 들춰내고 파들어 갈수록 끝도 없이 끌려나오는 쓰레기더미 속은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유리구슬이며 카세트테이프, 낚시도구들로 가득했다.
쓰레기를 치우며 구슬땀을 흘리던 한 봉사자는 "화재 이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계신 줄 몰랐다"며 "하루 빨리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작업에 매진했다.
쓰레기 제거 작업이 진행되고 6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집의 형체가 드러났다. 열기에 녹아 서로 엉켜 붙어있는 옷가지들과 신발들 사이로 드러난 타고 그을린 가전제품이 화재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했다.
창고를 가득 메우고 있던 폐목재를 걷어내고 상자 가득 들어있던 빈병을 수거해 손수레로 실어나르는 봉사단원들의 이마에는 어느새 굵은 땀방울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동기의 권유로 참여하게 됐다는 대우중공업 사관학교 3기생 윤대한씨는 "화재를 겪은 분의 고통에 비하면 조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또 "주위를 돌아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다는 것을 느꼈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니 무료했던 주말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어 뜻 깊었다"며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꾸준히 참가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쓰레기 수거 작업을 마친 단원들은 거제시와 거제소방서가 연계해 화재 건물을 철거하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으로 이어 나간다는 소식에 기뻐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생활이 가능할 수 있도록 도배와 장판까지 공사를 마친 컨테이너가 준비됐다"면서 "추석 명절 전까지 완공하려 했지만 이수도로 컨테이너를 실어 나를 크레인과 바지선 섭외가 여의치 않아 지체됐다. 후원인을 모집해 늦어도 9월말까지는 설치를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참가한 봉사단원들은 입을 모아 "하루 빨리 집이 완공돼 이씨가 따뜻한 집에서 편히 지내시길 바란다"며 마을주민들의 애정과 관심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마음까지 풍요로워지는 추석을 앞두고 이웃과 어려움을 함께 하며 온정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이번 명절이 뜻깊게 다가온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안부전화 한 통 드리고 싶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