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남기 / '문장21' 》시 등단
부러진 놋쇠 숟가락이
기억을 상실한 채
툇마루 한켠에서
엿장수를 기다린다
두드리는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대중이 없다
장단에 맞춰 춤추는 물상들
생명력 잃은 숟가락
밑창 뚫린 고무신
헛간에 걸린 통마늘
이제 최후의 만찬을 즐길 때다
연신 휘몰이장단으로
흥을 돋우는 엿장수
배고픈 시절의 추억
돌아온 방물장수가
잊혀진 조각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으며
아픈 기억의 세포를 위하여
가위로 진혼곡을 연주한다
엿장수 마음대로
·시 읽기: 《문장21》(2014. 가을호)에 실린 시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시인도 결행에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관용구를 골계미로 장치하여 중의적 의미를 함께 담아 놓았다. 엿장수 마음대로에 초점을 맞춰 읽어 보면,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대중없다. 때로는 휘몰이장단이고, 때로는 진혼곡이다.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시인의 말처럼 어릴 적 "부러진 놋쇠 숟가락"이나 "밑창 뚫린 고무신"으로 엿을 바꿔 먹던 "배고픈 시절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것이다. 현대인은 엿장수처럼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는 없다. 배려와 존중, 책임과 희생이라는 덕목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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