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 한마디에 희망을 봤습니다"
"부장판사 한마디에 희망을 봤습니다"
  • 박용택 기자
  • 승인 2014.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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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민간인희생사건 대법원 승소 이끈 김한주 변호사

2011년 12월12일 시작된 '6·25 전쟁 전후 거제민간인학살사건' 손해배상 청구 소송.  3년에 걸친 지리한 법적다툼 끝에 지난 7일 대법원이 유족들의 손을 들어 주며 마무리됐다.

이 소송의 중심에 김한주 변호사가 있었다. 지난 17일 김 변호사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승소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 2006년 진실화해를 과거사정리기본법이 만들어지면서 억울한 민간인 학살 사건이 드러나게 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2007년부터 조사를 개시했고, 2008 10월27일 조사를 마쳐 2008년 12월9일 희생자를 위한 진실규명을 결정했다.

국가가 민간인의 희생을 인정하면서 거제민간인학살사건은 2011년 12월12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3년여에 걸친 소송은 지난 7일 대법원이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끝이 났다.
 
Q. 힘든 점은 없었나

= 소멸시효에 대한 법리 논쟁은 간단하다. 법리논쟁보다 상속권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재적등본에 표기된 흘림 손글씨를 일일이 해석하고 개인의 방대한 호적관계를 밝혀주는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진화위 해체 후 모든 자료가 대전에 있는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면서 자료를 찾는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호적관계를 정리하며 누가 상속인인가, 적절한 청구권자가 누구인가를 확정 짓는 데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당시 50년대는 사망하면 일본민법을 적용해 장자상속이 원칙이었다. 법리로 치자면 상속권자는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려 노력하고 진화위의 조사를 받았던 친족이 아니라 망자와 일면식이 전혀 없는 증손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Q.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 장승포에 살고있는 한 할머니는 망자와 둘도 없는 우애를 자랑하던 사이였다. 어린 나이에 망자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본 분이었다.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속권자가 없다는 이유로 청구권을 상실해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거제를 떠나 살고 있는, 망자의 제사한 번 지내본 적 없는 상속권자를 찾아 설득하며 그 할머니와 위자료에 대한 합의를 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지세포 앞바다에 수장된 망자의 죽음을 목격한 그 할머니의 상처를 어떻게 위자료로 보상해줄 수 있는가? 가슴 아픈 사연에 법으로 어떻게 해드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희망이었다. 그것은 바로 법정에서 부장 판사의 한마디였다.

"국가가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을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고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Q. 앞으로의 계획은

= 승소 후 위령제를 치르니 망자 앞에 이제야 면이 선다. 부장판사의 한마디처럼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살인행위는 소멸시효가 없다. 국가가 시인 했고 유사한 사안에 대해 승소의 희망이 열렸다.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보도연맹사건을 잘 마무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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