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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가문의 영광’으로 부활하는 민족의 영광 - 국학원
 장츠하이
 2012-04-19 10:04:01  |   조회: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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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가문의 영광’으로 부활하는 민족의 영광 - 국학원

‘가문의 영광’으로 부활하는 민족의 영광







1949년 6월 26일은 나라가 독립 된지 4년 만에 상해임시정부 수반이셨던 김구 선생이 흉탄에 쓰러지신 날이다. 그로부터 17년 전인 1932년 6월 13일은 안동 임청각의 주인이며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인 고성이씨 후인 석주 이상용 선생의 서거일이다.

1908년 6월 21일은 윤봉길의사가 태어난 날이며 6월 6일은 석주 이상용의 휘하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한 ‘운초 계연수(桂延壽)’가 ‘환단고기’를 편집한지 1 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모두 ‘민족의 얼’을 중심삼아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 놓으신 분들이다.

‘환단고기’는 위서 시비가 있기는 하지만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단군 세기’는 고려 말 국무총리격인 ‘행촌 이암’ 저서이고, ‘태백일사‘는 이암의 현손인 ’일십당 이맥‘이 조정의 사고(史庫)의 정확한 자료를 토대로 저술한 거룩하고 위대한 한민족을 밝히는 불멸의 역저들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민족의 정체성을 밝히는 저술들을 보전하려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근조선 왕권의 폭압적인 멸절의지 하에서도 그 책들이 보전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만도 6백여 년이 넘으니, 얼마나 많은 분들이 박해를 받았는가! 얼마나 많은 분들이 목숨으로 지켜 왔는가! 그 가치는 말로는 논할 수 없는 거룩함 자체인 것이다.

‘단군세기’, ‘태백일사’를 핵심으로 한 ‘환단고기’는 고성 이씨 문중의 가학(家學)으로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그 아들에게 은밀하게 전해온 한민족의 족보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진실을 모르는 이 많고도 많다. 김삿갓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몰랐다고 평생을 해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핏줄보다 훨씬 위대하고 거대한 민족의 선조를 모르는 후손이 상기도 많거늘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6월 6일을 기하여 고성이씨 문중의 요청으로 사단법인 국학원에서는 대한민국 최초로 ‘민족사의 맥을 이어온 고성 이씨’의 ‘가문의 영광’ 교육 겸 ‘대동 효 잔치’를 실시하였다.

70~80세와 50~60대, 20대로 3대가 모인 귀한 자리에서 감동과 놀라움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고성 이씨 문중만이 아니라 석주 이상용의 막내 처제인 김락(의성 김씨)과, 그 시아버지 향산 이만도(진성 이씨)의 자정 순국에 얽힌 ‘대한의 어머니 김락’ 연극도 공연하여 많은 참석자들이 눈물을 떨구었다.

대부분 서울과 안동, 청주등지에서 온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고성 이씨 문중의 영광이 국조 단군의 영광’으로 새로운 한민족의 부활이 지구의 미래와 다름이 아님을 깊이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씀하였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마지막 항복 소식을 듣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는 뜻으로 문경聞慶이라고 하듯이 안동도 고려 건국에 삼태사의 공로로 큰 인연을 맺었다.

그 두터운 인연은 면면이 흘러 고려 말까지 이어진다. 안동(安東)이란 지명은 <安於大東>이니 고요한 동방 아침의 나라 대동(大東) 고려(高麗)를 안전하게 한 고을이란 뜻이다.(동국여지승람)

안동은 모두 다 알다시피 순수한 학술의 고향이요, 노브리스 오블리쥬를 사회에 실현한 선비의 고향이다. 안동 인근의 의성의 고운사와 청량산은 신라말기의 문창후 최치원 선생의 발자취가 머물고 있어 한민족의 선도의 핵심인 천부경의 향기가 가득히 서려있는 곳이다.

고려 왕조 이전의 신라와 발해 남북국 시대, 그 이전의 삼국시대, 그 이전의 국조 단군 조선, 더 이전의 한웅천황의 배달국, 더 올라가 한인 천제의 한국까지를 아우른 대동사(大東史)를 지은이는 바로 안동인 동산 류인식(東山 柳寅植,, 전주 류씨)이다.

그는 일찍이 스스로 상투를 자르고, 공맹(孔孟)을 넘어서 나라를 되찾자고 ‘혁신유림’을 주창하여 아버지와 스승에게 절연과 파문 선고를 받았다. 결국 서거 후 오랜 기간이 지나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어 민족을 살리기 위한 불세출의 역사가요 광복의 어른으로 영원한 기림을 받게 되었다.

류인식과 함께 혁신 유림 운동을 벌인 일송 김동삼(一松 金東三) 역시 안동인이다. 그는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만주로 건너가 하얼빈에서 체포될 때까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모두 바쳤다.

일송은 일본군과 밀정들이 우글거리며 활개를 치는 단군의 땅인 만주의 ‘광야의 맹호’였으나 1937년 4월 13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다. 만주벌에 묻은 일송의 20년은 독립운동, 군관양성, 재 만주 동포의 민생안정과 권익옹호 교육으로 일관 된다. 가곡 ‘선구자’는 일송 김동삼에게 바치는 민족의 마음인 것이다.

또한 안동은 배산임수, 장풍득수형 지세가 서울과 유사하여 천년 도읍지라고 일컬어진다.
공민왕의 친필인 웅부 안동(雄府 安東)의 편액이 걸려 있듯이 이름 그대로 경북의 도청 소재지가 되고, 낙동강의 새로운 물길의 원류가 되고, 막대한 예산의 백신 공장이 설립된다. 명성대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로서 그 풍부한 역사와 민족의 정체를 알린 내용을 모두에게 제대로 교육시켜 새 천년의 본 고장이 되어야 한다.

이제 안동은 새로운 경북의 도청소재지로서 제3의 혁신 유림운동의 힘찬 발현으로 모든 문중과 지역, 사상, 종교를 넘어 한민족의 얼, ‘코리안 스피릿’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2012-04-19 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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