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정확하게 90년전 3월 1일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기미년 삼일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 발화점이었다. 고종 황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을 빌미로 황위는 순종에게 강제 양위되고 그야 말로 뒷방의 노인이 되어 지내다가 1919,1, 21 갑자기 승하하시게 된다.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사인을 뇌일혈로 발표했지만 고종이 일제의 사주를 받은 전의에의해 독살됐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종께서는 평소 건강하셨는데, 1월21일 새벽 식혜를 드시고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 자리에 있던 궁녀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폭사당하는 등, 의문의 사건이 연거푸 일어난다. 고종께서는 독살을 염려하여 면역력을 키우기 위하여 평소에도 조금씩 독을 섭취하셨다고 하는데 그 시신에서는 검은 반점이 발견 되었고, 그날 밤 궁전의 숙직 책임자가 이완용으로 급히 교체되었다는 사실이 독살의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로서 천 년 간의 중국과 신흥 일본의 위협 아래에서 벗어나 대한제국을 통해 진정한 자주 독립국을 꿈꾸었던 고종황제와 조선백성의 꿈은 사라졌고 그 처절한 아쉬움이 인산일을 기해 기미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평화로운 만세시위의 현장에서는 유관순열사의 부모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일경의 무차별 난사에 의하여 죽고, 다치고 투옥 되었으니 일견 부질없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기운이 세계로 뻗어가니 중국은 손문에 의하여 비로소 본격적인 항일투쟁이 일어나고, 인도는 간디에 의하여 무저항주의로, 필리핀, 베트남, 이집트까지 독립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삼일 만세운동은 당시 세계 인구 3분의 2에 달하는 식민지의 피 지배자들에게 인간의 자유의지를 향한 희망의 등불이 된 것이다. 그 자유와 존엄의 중심에 유관순이 있었고 유관순의 중심에 한민족의 혼이 있었던 것이며 유관순은 천안, 충청 정신의 핵심인 것이다.
이 운동으로 격발된 민족혼은 다음해인 1920년 청산리에서 큰 승리를 일구어 자존의 투쟁이 대륙으로 크게 번져 나가게 된다. 청산리 전투에서 유, 무명의 독립군들이 6일 동안 먹은 것은 단지 감자 5알이었다.
광복의병들은 혁대와 양초를 씹으면서도 두 눈에 활활 광복 독립의 의지를 불태워 승리를 일군 것이다.
그러한 선조들의 신념어린 희생과 순국의 의지에는 오직 인간의 순수한 밝음을 향한 믿음과 그것을 이 땅위에 실현하기 위한 민족의 얼이 서려 있는 것이다.
‘얼’ 이라함은 ‘어울림’이라는 순수한 우리말로써 ‘조화로운 하나 됨’을 뜻한다. 우리말 ‘어른’이란 그런 조화심의 ‘어울림이 너른 분’이고, 어린이란 ‘어울림이 여린 사람’을 뜻한다. 작게는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의 어울림으로, 크게는 가정과 사회, 국민으로서의 어울림, 크게는 인류로서의 어울림이 있다. 나아가 하늘과 땅과 인간(뭇 생명)의 어울림을 ‘천지인 합일’이라고 하여 인간의 최고의 가치로 인정 하는 문화가 우리민족의 고유한 전통인 것이다.
우리는 ‘한 얼속에 한 울안에 한 알’이라는 진리의 말씀이 오래전부터 한민족의 어른들께서 다음 세대에게 전해준 말씀이다. 즉 우리는 ‘우주의 하나 된 진리속에서, 인류와 지구라는 공간속의 개개인이다.’라는 하나와 모두를 아우르는 가르침이신 것이다.
그것을 회복하기 위하여 ‘천지인이 어울린 인간 본연의 빛남’을 추구하는 것을 광복운동이라 하고, 그것을 되찾기 위한 군인을 광복군이라 하고, 독립을 통하여 자유롭고 독창적으로 그 가치를 추구 할 수 있게 된 날을 광복절이라고 한다.
그 광복의 의지는 바로 한민족의 건국과 교육의 이념인 홍익인간의 철학에서 비롯되어 끊임없이 샘솟고 있는 것이다.
독립기념관과 단군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국학원 또한 홍익인간이 되어 이 땅위에 진리의 세계가 건설 되도록 하기 위한 교육의 전당으로 건립되어 만은 국민들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국학원 경내에 한민족 역사문화공원이 조성 되어서 인간사랑, 나라사랑, 지구사랑 교육과 문화의 근원지로 성가를 높이고 있다.
이곳을 다녀가는 모든 학부모, 선생님, 학생, 회사원, 경찰, 군인, 공직자들은 그냥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삶의 본모습과 한민족의 사명, 인류의 창조적 미래에 대한 발고 명쾌한 해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방문자들의 일관된 소감이다.
이는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한민족에 대한 거룩한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이미 우리의 선조들에 의하여 그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인 것이다.
또 천안과 아산은 임진왜란 당시 꺼져가는 나라의 명운을 이은 충무공 김시민장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체취가 어린 곳이며 90여 년 전, 삼일만세운동의 주역인 유관순열사와 광복의 열정을 아낌없이 발휘하신 천안과 아산을 위시한 충청인의 정신은 한민족의 마음을 보전하고 광복하는 소임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