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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봄이 왔어요 '1592년 4월은 잔인하고 참혹하였다' - 국학원
 장츠하이
 2012-04-20 17:21:17  |   조회: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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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봄이 왔어요 '1592년 4월은 잔인하고 참혹하였다' - 국학원

봄이 왔어요 '1592년 4월은 잔인하고 참혹하였다'



또 어김없이 새 봄이 왔다. 봄은 볼거리가 많다고 봄이다.

국학원의 본관 까마득한 처마에는 작년에 이어 황조롱이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시내보다 약 2도가 낮은 산중이라 이제 산수유가 피었고, 개나리에 이어 진달래, 이팝나무, 영산홍, 두견화와 각종 꽃들이 경쟁하듯이 가득 피어날 것이다. 나날이 새롭고 아름답다. 뿐 아니라 온 국민은 세계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야구선수들과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김연아 선수에게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도 하고, 봄이 왔건만 봄이 아니라고도 한다. 春來不似春. 특히 1592년 4월은 잔인하고 참혹 하였다.

4월13일 경상도 동래부 다대포 응봉봉수대(鷹峰烽燧臺)로부터 왜군의 700여 병선(兵船)이 쓰시마를 출항하여 부산포에 이르고 있다는 상황보고가 경상·전라도의 각 감영(監營)과 중앙에 전달되었고 이어 조선은 파죽지세로 밀어닥친 왜군의 말발굽아래 짓밟히기 시작한다.

무려 7년의 전쟁이 끝나자 모든 것은 파괴되고 조선인의 45%가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마저도 코와 귀가 베어진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민족적인 비극을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맞닥트려 풀어 가신 분들이 대표적으로 충무공 이순신장군, 충무공 김시민 장군들이시다.

충무공은 총 아홉 분이 제수를 받았고, 그중 임진왜란에 관련 된 분은 네 분이고, 그 전장에서 목숨으로 승리를 일구신 분은 두 분이시다. 한 분은 육전에서, 한 분은 해전에서의 헤아릴 수없는 공을 쌓으셨으니 아산의 외갓집에서 자라신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천안 목천 출생의 충무공 김시민 장군으로 두 분 모두 국학원이 자리한 단군산을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임진왜란에 존재하셨다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김시민 (金時敏 1554∼1592) 장군은 천안의 목천(木川; 현재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 잣밭마을) 출생으로 24세에 무과에 급제한 뒤 1591년 진주판관이 되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난다. 목사 이경(李璥)이 병사하자 그 직을 대리하면서 삼 만 명의 일본 정예군을 단 3천 5백 명으로 막아 2만 여명을 괴멸, 패주시킨 명장으로 임진왜란 3대 대첩의 주인공의 한 분이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보다는 9살, 토요토미 히네요시와는 18살, 임진왜란이후 급성장을 하는 청나라의 누르하치보다(淸나라 고 황제) 5살 연하이며, 나라를 혼란의 수렁에 빠트린 선조보다는 2살 연상이다. 몽골의 침입에 끝까지 항거한 고려의 충신 김방경의 13대 손으로 1차 진주서 전투에서 당시 세계 최강인 왜군의 예봉을 꺾고, 연전연패로 몰살당하기 일쑤인 조선의 육전에 최초의 승리를 이루시고 결국 그 전투에서 돌아가시게 된다.

지금도 우리는 월남전, 이라크 전과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동란 등으로 지칭하여 모두를 전란 戰亂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전戰은 나라 밖의 타 민족과의 싸움을, 란亂은 내란같이 나라 안의 싸움을 뜻한다.

즉 임진왜란의 일본과 병자호란의 만주족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의미가 있다. 실제로 청나라의 황제들은 누르하치부터 마지막 황제 부의까지 자신의 성을 애신각라; 아이신줴뤄[愛新覺羅]라고 하여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잊지 말자면서 조선과 청은 하나의 형제국이라는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

누르하치가 처음 세운 後金(淸의 전신)은 신라 왕족 金씨들이 세운 金나라를 이은 것으로 자인하고 있었기에 누르하치는 아들 청 태종에게 “조선은 어머니의 나라와 같으니 절대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유언을 한다.

이런 역사적 혈연관계를 무시한 채 오로지 존명사대를 일삼은 임금과 대신들의 판단 미스로 비극을 자초한 것이다. “에비에비”라는 말은 본래 “이비이비(耳鼻耳鼻)”로 너무 시끄럽게 굴면 ‘일본군이 와서 ‘코와 귀를 베어 간다.’는 뜻의 임진왜란의 산물이다. 그 후 38년 뒤 병자호란에는 포로로 끌려간 많은 부녀자들이 돈을 주고 풀려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자 이를 이르는 ‘還鄕女’라는 말이 생겨난다. 이는 곧 품행이 좋지 않은 여자라는 ‘화냥년’이 되어 우리의 어둡고 비뚤어진 역사의 산물이 되어 속담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 오게 된다.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한 김시민 장군과 이순신장군이 이웃한 천안과 아산 출신이고 똑같이 충무공 시호를 받았다는 것은 천안과 아산시민들의 영광인 것이다. 그러나 김시민 장군의 생가의 보존 상태는 만족할 만한가?

최근에는 이순신 장군의 생가가 경매에 붙여지는 애타는 일이 벌어졌다. 충무공들이 누구이신가? 이런 불미스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나라와 국민들은 평소에도 각별히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은 우리를 어여삐 여겨 똑 같은 4월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이 땅에 태어나시도록 점지 하시니 그날이 4월28일인 것이다.

이 새봄에 그 누가 태어나고, 그 누가 죽어도 시냇물은 흐르고 새는 노래 할 것이다. 국학원에 또다시 후투티는 날아들고 두견새는 밤새 울 것이고 조팝나무는 꽃을 흐드러지게 피울 것이다. 그러나 어제의 노래는 오늘의 노래가 아니고, 어제의 꽃은 오늘의 꽃이 아니듯이 어제의 역사가 오늘의 역사일 수는 없다.

어제의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고 찾아내어 새로운 오늘의 역사를 창조해야만 한다. 그것이 또다시 새봄을 마지 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2012-04-20 17: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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