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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민족 실존으로서 우리 말과 글 - 국학원
 장츠하이
 2012-04-23 16:12:29  |   조회: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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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민족 실존으로서 우리 말과 글 - 국학원

민족 실존으로서 우리 말과 글



조선어학회 사건은 단순한 우리말 지키기가 아닌 민족 실존 보존운동

“주체성, 이것은 그 민족에 대한 외세의 간여와 침략에 대하여 민족적인 자각 아래 스스로의 힘에 의거하여 그 세력을 배제하면서 자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스스로가 달성하려는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실천을 뜻한다. 따라서 민족의 주체성은 그 민족사를 움직이는 열원(熱源)이 된다.” (‘한국사의 시각’, 박창희)

민족의 주체성은 민족을 민족답게 하는 속성이다. ‘민족됨(nationness)’을 이루는 요소는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한민족에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배달민족이라는 말이 품고 있는 혈연의 동원(同源)이다. 한 사람의 조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군 한 사람의 혈통을 지녔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단군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 구성원의 혈연적 후손이라는 의미다. ‘단군의 자손’은 단군 공동체의 대물림 받은 겨레라는 말이다. 단일민족은 타민족의 수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주류의 혈통적 단일성과 순수성을 상징하고 있다.

혈연적 단일성과 상호관계는 한민족됨의 첫째 가는 속성인 것이다. 국민이라는 국가 구성원의 자격과 민족과는 다르다. 한민족이라는 이 ‘상상의 공동체’는 혈연적 연대성이 없인 불가능하다. 둘째는 혈연적 공통성에 민족 주체성의 속성을 확실히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말’이다. 그리고 ‘글’이다. 글로 쓰인 말이 문자다. 우리에겐 한글이다.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킨다는 것은 우리의 주체성을 지킨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이 더 없이 숭고한 민족정신 광복운동이었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은 자신의 언어를 가진 자신의 국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족이다”라고 설파한 독일인 폰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의 민족됨의 개념은 음미해봄직하다.

민족 주체성 확실히 하는 말과 글

지난 4월 19일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링컨박물관 개관 기념행사에서 수필 대상 수상자로 한국계 이미한양(17)이 뽑혔다. 이 소녀는 조선어학회 사건의 주동자 중 한 분으로 옥고를 치른 고(故) 정인승(鄭寅承) 박사의 외손자의 딸이다. 뿐만 아니라 정박사와 함께 민족교육에 몸바쳤던 고 이병학(李丙學) 선생의 증손녀이다.
소녀의 혈통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쓴 수필의 주제였다. 이양은 “내가 아는 자유는 곧 내 언어의 자유”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정신이 내림한 내용이었다.

일제의 한글과 우리말 압살정책에 대한 저항정신과 자유의 소중함을 연계한 내용이었다. 이양은 이 짧은 글 속에서 일제의 압박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 모국어를 마음껏 사용할 자유를 소망했던 할아버지의 비전에 생각의 뿌리를 두었다. 그의 이름 ‘미한’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의 준말이다. 조상의 얼이 담긴 이름이기도 하다.

일제는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사전 편찬작업을 민족운동으로 규정했다. 광복 이틀 전(1945. 8. 13)에 내린 일제 고등법원 형사부의 판결문은 일제가 우리나라 어문문화 말살정책과 민족정기 소멸에 얼마나 간악했는지 잘 보여준다.

“피고인 등은 지금도 가슴속 깊이 농후한 민족의식을 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여러 상황을 종합하면 피고인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의 본건 범행은 실로 중대 악질이어서 조금도 동정할 만한 정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본건은 10여년의 장기간에 걸쳐서 일반 사회에 극히 심대한 악영향을 끼친 것이기 때문에 악화의 경향이 엿보이는 반도 현하의 사상 정세에 비추어 일반 타계(他界)의 의미에서도 피고인 등을 엄벌에 처하는 필요가 있음을 통감하는 바로 당원(當院)은 상 피고인 4명에 대하여 언도한 전기 판결은 형의 양정이 너무 부당하다고 사료되는 현저한 사유가 있다 하여 상고하였다 하나 기록을 정사(精査)하고 범정(犯情), 기타 제반 사정을 짐작하여도 원심의 양형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할 만한 현저한 사유를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논지는 이유 없다. …따라서 전시 형사 특별법 제29조에 의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소화(昭和) 20년 8월 13일 고등법원 형사부.”

조선어학회에 참여한 인사들은 단순한 국어학자가 아니었다.
“오늘날 이렇듯 쇠잔하고, 이렇듯 미약한 우리 배달민족의 ‘살아나기(更生)’에 대하여 가장 중대한 관계와 근본적 의의를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교육이다”라고 최현배 선생은 ‘갱생의 길’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어 그는 구국의 충정을 밝히고 있다.

“한자는 우리에게 망국적 문자”

“우리의 세계 인류상 지위가 아무리 낮다 하더라도 조선이란 것을 떠날 수 없는 것과 같이 우리의 희로애락의 감정과 발분망식(發憤忘食)의 노력이 또한 조선이란 것을 떠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를 구하기 전에 조선을 구하고자 한다.”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이어받은 한글 사랑은 단순한 우리글 지키기가 아니다. 그것은 민족적 갱생이 이 지상의 과제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통탄했다.


“문자 그것이 목적이 아니며, 귀중한 가치가 아니라, 그 문자로 말미암아 표현된 사상과 감정의 전달이 목적이며 가치다. …아아! 한자의 학습에 비(費)한 민족적 정력의 쇠로와 민족적 상기의 위미(萎靡)가 얼마나 크며… 아아! 한자 한자! 이는 우리에게 정히 망국적 문자이었다.”

우리말 큰 사전에 실려 있는 16만4125개의 낱말 중 52%인 8만5727개가 한자어다. 때문에 동방예의지국이라 자칭하면서도 제나라 말로 인사말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슬픈 역사다. 말과 글엔 역사성이 있고 사회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언어는 민족의 실존일 수밖에 없다. 우리말, 우리글을 지켰던 조선어학회의 노력은 민족 실존의 보존운동이요, 주체성의 발로였다. 그리고 민족 얼의 승리였다.
2012-04-23 1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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