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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국학이야기15 - 민간 신앙의 원류는 단군 - 국학원
 ekfekfdl
 2012-04-26 13:12:13  |   조회: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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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국학이야기15 - 민간 신앙의 원류는 단군 - 국학원

국학이야기15 - 민간 신앙의 원류는 단군



돌단 쌓고 절하는 것은 원시신앙의 원형

토지와 부락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서낭신'이라 부른다. 천신과 산신, 그리고 마을신(洞神)에 대한 신앙의식의 발전, 통합현상이다. 이 신앙의 원형은 단군신화다. 하늘과 땅, 사람이 하나라는 천지인(天地人) 사상이 소박하게 나타난 것이 서낭신이다. 그래서 '당(堂) 신앙'의 대상은 자연스레 천신, 산신, 부락신이 된다. 이 세 신은 완전한 동격의 삼위일체다. 누군가 우위에 있는 계급적 질서가 지배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있게(有) 하는 원인자 구실을 한다. 상보(相補)와 상인(相因)의 역학관계다.

우리 조상들은 높은 산에서 하늘과 사람이 만나 얘기하는 것으로 믿었다. 때문에 높은 산엔 신이 거처하고 그래서 신령스럽게 믿어 산신제를 올렸다. 위대한 장수나 임금, 혹은 치자(治者)는 죽어 산신이 되어 부락을 지키고 나라를 지킨다고 믿었다. 단군 역시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산신은 호국신이면서 부락신이고 당신(堂神)이다.

단군도 제사를 지내던 제천자

부족이 이주하면 반드시 정착지의 가장 높은 산을 찾아 그 주봉에서 제사를 올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제일 높은 봉우리를 뫼(白山)라 불렀다. 사람들은 이 뫼를 숭앙하고 함부로 범하지 않았다. 마을마다 신산(堂山)과 신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다. 단군도 신단수 아래, 곧 뫼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천자(祭天者)였다는 것이 최남선의 연구다. 마을은 산을 만들고 돌을 쌓고 신수(神樹)를 정했다. 하늘에서 높은 산으로, 다시 부락의 얕은 산, 돌더미와 나무에 임재한 것으로 믿었다. 무격의 '신장대'나 강신용(降神用) 모사(茅砂)도 이런 신앙심리의 하나다. 돌 쌓음(累石)과 신수, 당집 신앙의 중심은 천신숭배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단군을 '壇君'으로 표기해 돌단에 의미를 두었다. 제왕운기에서 이승휴는 단군을 '檀君'으로 써 신수에 무게를 두었다. 작고한 조지훈은 '한국학 연구'에서 단군의 다른 표기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결국 박달나무를 신수로 하고 누석(累石)으로 설단(設壇-단을 만듦)한 신역(神域)에서 거행된 추대의 부락제를 상징한 신화인 것이다. 오늘의 부락제 의식은 많이 유교화했으나 여러 가지 점에서 원시 부락제의 잔영임을 느끼게 한다."

산길을 가다 보면 돌을 던져 쌓은 서낭돌무더기가 있다. 전설엔 주나라 강태공의 처가 남편이 불우하던 시절에는 그를 버리고 나갔다가 입신양명해 오자 수레 앞에 엎드려 받아줄 것을 빌었다. 강태공은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고 퇴박을 놨다. 창피를 못 참아 부인은 자결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밉다고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전설은 우리의 민속신앙과는 다르다. 돌을 쌓고 절을 하는 것은 숭앙의 표시다. 거기에다 침을 뱉는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돌단을 쌓고 절하는 것은 하늘을 숭상하고 자연에 경배하는 원시신앙의 원형이다.

전통적으로 섣달 보름 저녁부터 정월보름까지는 '서낭'을 받든 사제가 앞서고 농악대가 풍물을 치며 집집을 돌았다. 소재강복(消災降福)을 비는 것인데 하늘에 대한 외경심을 통해 마을의 번영을 기원한 소박한 흥행이었다. 신에게 비는 기도의 의식이 흥행예술화한 것이 오늘의 풍물놀이다. '화랑'이 '화랑이'가, '솟대장이'가 '곡예사'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월이면 보던 전통놀이가 이젠 거의 없다. 미신이란 비난 속에 고개 숙였다. 방울과 북을 달았던 서낭대는 단군신화의 잔영인데 오늘날은 굿판에서나 보게 되어 씁쓸하다.
2012-04-26 1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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