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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국학이야기16 - 한민족의 사유체계 '천부경' - 국학원
 장츠하이
 2012-04-27 13:10:21  |   조회: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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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국학이야기16 - 한민족의 사유체계 '천부경' - 국학원

국학이야기16 - 한민족의 사유체계 '천부경'



우리에게 내재된 스스로의 정신으로 우리의 삶을 키워야

해방 이전과 이후를 나눠 벽을 쌓았던 국학, 한국학 분류방식은 인문과학이냐, 사회과학이냐를 놓고 또다시 학문의 방법론에서 칸을 치는 자폐증세를 보였다.

국학은 우리 조상이 활거하던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분야에 관한 연구다. 학계의 통설처럼 문학, 역사, 철학만은 아니다. 인간은 정치체제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정치적 구조물을 형성하는 분자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그 체제와 구조를 떠나 존재할 수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자기이익과 기득권 보호라는 이기주의 때문에 자기 분야에 대한 외부인의 말은 타당성에 아랑곳없이 영역침범이라 하여 무조건 물리쳤다. 경계의 벽이 높고 두터워지면서 분야별 오감이 없어졌다. 실학에서 보는 분과적 연구에 매달리지 않으면서도 문학, 자연과학, 역사, 철학은 자유로이 가로지기가 있었다. 실학 전체를 아우르지 않고 문학은 문학만, 역사는 역사적 성과만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내 텃밭 만들기가 오늘까지 국학의 경향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진정 '국학 공부법'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학의 방법론이 없었다 해도 통합적이어야 한다면 그 연구는 학자간에 자유로운 오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땅에서 일어난 정치, 문화, 사회, 경제, 철학, 역사, 종교 할 것 없이 모두가 연구 대상으로 서로간에 가로지름이 되어야 한다.

국학 연구의 시원은 어디일까? 무엇부터 해야 할까? 우리가 찾아 오늘에 재창조할 것은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천부경이다. 신라 최치원이 고쳐 정리했다는 81자의 천부경이야 말로 국학공부의 첫번째 과제다.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를 통해 우리는 사회적 갈등과 모순에도 어떻게 수백년의 왕조가 지속되었는가에는 의문을 던지지 않는다. 부패, 부조리만을 들추어내어 왕조의 비도덕성을 공격해왔다. 그러나 왕조를 지탱한 것은 사회통합과 신뢰의 구조였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충족되지 않으면 왕조의 탄생은 불가능했다. 반대로 이들 요소가 붕괴되면 왕조는 끝장나고 말았다. 그런 속에도 한민족이 공통적으로 지닌 세계관, 인생관이 있었다. 그것은 천지인(天地人) 합일 사상이었다. 천부경이 말하는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다.

국학공부의 첫번째 과제

자연으로 대표되는 하늘,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대등한 관계에서 공생의 의지로 여기는 마음이 조상들의 태도였다. 나라의 변고, 예를 들어 가뭄이 심해도 임금은 자기의 부덕으로 돌리며 기우제를 지냈다. 그것도 삼베옷으로, 수라상마저 간소하며 근신했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 사상도 조상들의 의식 속에 수천년 살아 숨쉰 자연과 하나 되려는 정서가 담겨 있었다. 세종은 용비어천가 120장에서 '민자왕소천(民者王所天)'이라 했다. 백성이 하늘임을 천명한 정치철학이다.

오늘날 국학을 통해 조상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까닭은 진정한 우리의 내면, 우리 뿌리를 찾기 위함이다. 서구 사조에 맞춘 잣대로서가 아닌, 우리에게 내재하는 스스로의 정신을 키워 우리의 삶을 키우자는 것이다.

사람과 하늘, 땅이 따로따로가 아니다. 우주의 둥글음을 표시한 일(一)에서 시작하여 일(一)로 끝나는 81자의 천부경이 함의하는 도는 현묘한 도임에 틀림없다. 자연과 함께하는 풍류도를 31개의 숫자가 엮여 50개의 문자로 내놓은 것이 천부경이다. 타자(他者)의 사유체계에 의지한 학계에 우리의 사유체계를 대체해야 한다. 그 대체물이 천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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