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산(望山)에 올라
망산(望山)에 올라
  • 거제신문
  • 승인 200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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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이다. 산은 대기권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어떤 동식물도 살아가기 힘든 죽음의 산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산을 정복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러다 1953년 5월 29일. 드디어 영국의 등산대에 의하여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의 정상을 밟게 된다.

그 후 한국인으로는 1977년 9월 15일 에베레스트 원정대 고상돈 대원에 의해 열네 번째 정상 정복에 성공한다. 초기만 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참으로 무모한 인간의 도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죽음의 산꼭대기를 오른다는 것도 부질없지만 마치 바벨탑의 전설처럼 신의 영역에 대한 인간의 반란쯤으로 여기기도 했다.

1924년 에베레스트 등반대원 조지 마로리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엇 때문에 산에 오르느냐는 질문을 받고 던진 멋진 대답이 아직도 명언으로 남아 있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라고.

 

그렇다. 산이 거기 있어 사람들은 산에 간다. 거기 무슨 이유가 있으랴.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이르기를 ‘왜 산에 사느냐기에 / 그저 빙긋이 웃을 수밖에 / 복사꽃 띄워 물은 아득히… / 분명 여기는 별천지인 것을’라는 시가 어쩌면 그 대답과 맥을 같이 하는지 모른다.

지난여름 지독히 더웠던 어느 휴일 전남 장성에 있는 백암산에 오른 적이 있다. 봄은 백암산이요 가을은 내장산이라고 하지만 백암산 단풍이 결코 내장산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고불총림도장 백양사를 품고 있는 백암산은 불과 741m에 불과하지만 오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백학봉 1.3㎞까지 가파른 길에 놓인 나무계단을 정떨어질 만큼 걸어야 한다.그런 길을 팥죽 같은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데 마침 약사암 젊은 스님과 마주쳤다.

스님은 내 꼴이 하도 딱해서인지 “이 더운 여름날 무얼 하려고 고생을 사서 하십니까?”하고 웃으셨다.

그래, 참 옳으신 말씀이다. 나도 씩 웃으며 말해 주었다. “스님, 사는 게 다 사서 고생하는 게 아닙니까? 스님도 스님하시는 게 사서 고생하시는 거구요.”

내가 산을 즐겨 찾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가만 생기면 산에 오르는 일이 하나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았다. 2002년 유엔이 정한 ‘세계 산의 해’를 맞아 산림청이 ‘한국의 100대 명산’을 선정한 일이 있다.

작년 초여름부터는 그 100대 명산을 부지런히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먼데 산에 가기 어려운 때에는 가까운 산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런데 거제도의 산들이 어느 100대 명산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엊그제는 망산(望山)에 올랐다. 왜 이런 산이 100대 명산은커녕 한국의 200대 등산지도에도 빠져 있는지 참 안타깝다.

사람들은 그럴 거다. 낮아서 그렇다고. 물론 397m는 낮은 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300-400m급 산이 여섯이나 있다. 더구나 망산보다도 낮은 산이 있으니 그런 말은 설득력이 없다.

비록 1,000m급 산이라고 해도 그 오르는 들머리는 이미 해발 6-700m 정도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망산은 이미 그 출발점이 해발 제로의 지점과 진배없으니 비록 산의 높이는 400m지만 1,000m의 산에 버금가는 산이라도 해도 부족함이 없다.

등산로가 싱겁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빌미다. 명사초등학교 옆 들머리에서 올라 홍포로 내려서면 걷는 시간만 두 시간이요, 다대와 저구 사이의 고개인 주유소를 들머리로 각지미-여차-내봉산-호변암-호미장골-정상코스는 네 시간에서 다섯 시간 걸리는 긴 코스다. 이만큼 좋은 코스를 가진 산은 드물다.

또한 망산은 역사성도 가지고 있다. 청일전쟁 때 왜군들이 이 산에 올라가 진을 치고 망을 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망산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망산의 진가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에 있다. 여기서 보는 것만큼의 아름다운 바다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섬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떨리다 못해 코끝이 찡해옴을 느끼리라.

금빛보다 더 화려한 저녁 햇살이 물살에 얼비치며 만들어 내는 낙조는 망산 표지석의 뒷면에 새겨진 ‘천하일경(天下一景)’이 괜한 소리가 아님을 그제사 느끼게 되리라.

그런데도 이런 산을 아무도 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100대 명산을 선정한다고 해도 자료조차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각종 매스컴에 소개하는 데도 게을렀다.

관광거제는 여름철 행락이 아니다. 겨울에도 비가 오는 거제도의 특성을 관광과 연결 지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겨울산의 정취를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계룡산, 산방산, 노자산 등 거제의 산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야 한다. 관광거제는 말로만 되는 게 아니고 플래카드만 붙여 놓았다고 저절로 되는 일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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