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를 아끼고 돈을 주랴
매를 아끼고 돈을 주랴
  • 거제신문
  • 승인 200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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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원 칼럼위원

업무로 가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들러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

자연스레 교육에 관한 얘기로 화제가 옮겨지곤 하는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교실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은 옛말이 되었고, 복도에서 떠드는 학생 주의라도 주면 학부모로부터 항의가 뒤따른단다.

왜 자기 자식 차별대우 하느냐고 따지고 심하면 학교까지 와서 공개적으로 면박주기가 예사란다. 제법 지난 일이지만 ‘사랑의 매’란 것이 있어서 학교에서 아이들 체벌 할 경우 부모의 동의를 구하는 내용의 통신문을 받아 본 적이 있다. 너무 당연한 것 같아서 이런 것도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냐고 반문했던 기억이 있다.

제자식 귀엽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부모가 없겠지만, ‘귀엽게 키운 자식, 할아버지 수염 잡아당긴다,’라는 말이 있다.

교육(敎育)은 사람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단순히 지식만을 머릿속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짐승과 다르게 키우고, 진화의 결과로 터득하게 된 사회적 환경과 문화를 체득하게 함으로써 최소한 이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을 만들고 나아가 인류의 문명활동을 지속해 나갈 최고의 지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 본다.

완벽한 스승이 없다고 하여 선생과 학교를 등한히 한다고 하여 부모가 그 스승을 대신 할 수도 없다면, 차라리 학교와 선생을 믿고 자식을 맡겨야 한다.

짧은 소견으로 제 자식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고, 쥐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자식을 키우더라도 부모가 그 아이 늙어 죽을 때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고 또 그렇게 해봐야 자식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또래들 끼리 어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게 해야 한다. 잘못하는 자식 매한대 때렸다고 학교에 와서 항의하고 선생에게 삿대질하는 경우에 그 부모를 보는 학생은 부모가 대단해 보일까 생각해 봐야한다.

철없을 때는 부모가 대단해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안하무인으로 자란 이 자식은 결국 사회에서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사람으로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란 자식은 자신의 잘못된 인생에 대해 부모를 원망할 것이다.

옛날에 영남 순흥골에 황부자라는 1만석지기가 살았다. 밴댕이 세 마리를 놓고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고 하여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무일푼에서 묵정밭을 가꾸어 돈을 벌기 시작한 이 사람은 1만석이 되던 날부터 돈을 쓰기 시작했고, 영남에서 과거보러 상경하는 선비들의 노자나 말은 전부 이 황부자가 다 주었다 한다.

자식에게 재물을 물려주면 많을수록 인생을 더 많이 망친다하여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다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카네기가 그랬고, 조선의 선비 김학성의 어머니도 그랬다. 그렇게해야 자식들이 모자라는 것을 알고 돈의 가치와 근면함을 배운다는 것이다.

교육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제도가 다소 혼란스럽다고 해서 교육의 가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오늘날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학부모들은 믿음을 가지고 좀 더 인내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모든 부모가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자칫 잘못 이해하고 실천하게 되면 자식을 망친다. ‘귀한 자식 매 하나 더 주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식을 체벌하는 것이 마음 아프고, 자식이 원하는 것은 다 해 주고 싶은 것이 부모마음이겠지만 자녀를 길러 훌륭한 인간으로 만들려면 그 마음 다시 한 번 모질게 먹을 줄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5월에 맞게 되는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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