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봄맞이
  • 거제신문
  • 승인 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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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의 거제수필문학 회원

벗에게.

진작부터 동백꽃이 붉게 뜰을 채색하고 있다네. 그 곁에 연분홍 진달래가 예쁘게 꽃잎을 내밀더니, 오늘 아침에는 노란 개나리가 시샘을 하는구먼. 알레르기 기침은 계절 바뀌는 줄을 몰라도 나무는 벌써 저렇게 봄을 맞아 나섰군 그래.

식물을 두고 어찌 감정이 없다 하겠는가. 나뭇가지에 다가서서 터트리는 꽃봉오리를 바라보는 망연함에 인생의 꽃송이가 환영으로 피어나는구려. 벗들과 마주하고 책장을 넘긴 날도 주먹밥 싸서 소풍 가던 날도 엊그제 같건만, 이렇게 글로써 안부를 전하는 거리가 됐구먼.

그날들이 꽃보다 아름답고 영롱했던가 싶으이. 관망하는 세상은 세속(世俗)이 아니고 나무와 물과 새들의 세계라네. 거기에 꽃이 만발하니 시간을 잊기 예사로세. 꽃 감상을 나이가 거드는가 보이. 망팔(望八)의 사색에 감흥이 더했으니 말일세.

어찌 지내는가? 따사로운 햇살이 가정 깊숙이 비춰들어 환한 웃음이 소복소복 쌓이겠지? 벗들이 지어놓은 그리움도 함께 묻어나겠구려. 대나무는 사람의 뜻을 서늘하게 하고, 꽃은 사람들을 운치 있게 한다지 않던가. 자연에 당겨가 한가로이 풍취에 젖는 날을 늘리려무나.

둘러싸인 사람들 속을 줄달음으로 헤엄치듯 바쁘게 살았던, 그런 까마득한 추억 속에 다하지 못한 여운이 나를 거머잡는구려. 세월은 나를 거기에 두지 않는다고 했던가.

왁자한 웃음과 땀으로 젖은 삶이 보람을 채워줬던 행보를 저만치 밀치고 지내니 선경과 적적함이 한자리에 머무는군. 내 일신 포근하게 기대던 둥지에 구멍이 뚫렸으니 서글픔을 달래느라 더러는 가슴을 다독이는구먼.

이웃마저 뜸하고, 인적조차 드물어도 나뭇가지를 지나는 바람과 새들이 있어 새로운 벗을 만난다네. 한가로운 나이로 한가로운 곳에 머무니 비로소 자연이 일러주는 소리가 귓가에 서성이기도 하고 말일세.

참으로 견디기가 어려운 것이 시간이어서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을 실감하는 날인들 어찌 없겠는가. 한데 늙은이 곁에도 봄은 오는가 보군. 그 거동에 취하여 인적조차 잊고 사니 언제나 강산은 고마울 뿐이라네.

성심으로 담가서 보내준 김치랑 나물을 아껴가며 먹었다네. 내외의 정리가 묻어왔던지 밥상에 올릴 적마다 물씬 한 사람의 향기가 눈가에 서리더군.

내게 가장 중한 게 뭐겠나. 고마우이. 남쪽에서, 파랗게 파도를 타고 꽃구경 오는 봄이 저리도 좋다네. 주름진  손을 거머잡고 언덕에 서서, 뒤꿈치 들고 발목이 저리도록 춘색을 감상해봄이 어떻겠는가.
사립문 밀쳐두고 찻물을 길러 오겠네.        

무자년 봄. 언덕바지 지킴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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