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 있는 자식들 집으로 오시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지하철역에서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의 손을 놓게 되어 아내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후 엄마와 아내를 잃은 가족들이 겪는 일상과 각자의 입장에서 엄마와 아내의 존재를 조명해 보는 내용이었다.
글을 읽는 동안 내 어머니의 삶과 맞물려 가슴이 많이 아렸다. 글에서 가족들은 나름대로 엄마를 찾아 백방으로 뛰지만 정작 어머니는 그 상황에서도 너무도 가난했던 그 시절 큰아들을 처음 홀로 서울에 보내놓고 염려했던 그 때로 돌아가 큰아들이 머물렀던 곳들을 헤메고 다니셨다.
결국 어머니를 찾지 못한 가족들은 살아 계시다면 어머니를 돌보아 줄 그 누군가에게 간절히 어머니를 부탁한다.
어버이날을 보내고 만난 친구는 많이 우울해 보였다. 또 병원에 다녀왔구나, 속이 많이 아렸겠다 싶었다. 3년전 친구의 어머니는 뇌졸증으로 쓰러지셨고 남동생네에서 지내던 중 직장생활을 하는 올케들이 너무 힘들겠다 싶어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당시 병원으로 옮길 때는 물리치료라도 제대로 받는다면 더 빨리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병원으로 모셨다.
햇수로 3년이 흐르는 동안 입원당시의 기대와 달리 드시는 음식은 밥에서 현재는 호스로 죽을 공급하는 상태이고 몸은 앙상한 뼈만 남으셨다. 2주전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엄마 이름만이라도 불러봐 달라고 애원했더니 간신히 “미야”라고 끝자만 부르시더니 이번에는 말문도 닫으셨더라고 했다.
입원초기에 병문안을 갈 때는 병원에서 잠깐이라도 입어 보시라고 예쁜 셔츠도 사다 드리고 갖가지 과일도 장만해 가서 이것저것 맛도 보여 드렸다.
그러나 지금은 과일도 준비할 필요가 없고 그렇게 목말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물 한모금도 기도로 넘어 갈까봐 그것마저도 함부로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한 달에 100여만원의 병원비는 5남매가 나누어 부담하고 있고 부산에 계시다 보니 친구는 2주에 한 번씩 부산병원을 다녀올 때면 여비부담도 꽤 된다고 했다.
친구는 이렇게 드는 비용을 건강할 때 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이며 길가를 지나가다 보면 이제는 사드릴 수 없는 어머니들의 옷이 왜 그렇게 눈에 자꾸 들어오는지 울컥울컥 목이 메인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언니가 이제 엄마 고생 덜하고 가셨으면 좋겠다고 하기에 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런 상태라도 엄마가 살아계셨으면 좋겠다며 가까이에서 더 수고하는 언니에게 화를 낸 것도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등 기념일들을 챙기다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살림을 꾸리는 입장에서는 추가로 늘어나는 지출 때문에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그 기념일들을 챙길 수 있는 대상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자식은 부모 기대만큼 자라주지 않아서 속상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식으로 태어나서 존재해 주는 것 자체로 감사하다.
양가 부모님의 살아 계심은 모심과 부양의 대상으로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나와 저 사람도 이렇게 키우셨겠지’ 내가 부모 되어 보니 그 마음을 알기에 감사하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멋있는 배우자가 아니라서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나와 결혼해서 함께 살아가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 살아갈수록 ‘어머님 은혜’ 노래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