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의 모든 시대극에서는 한결 같이 서울말을 사용하고 있다. 옛날에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같은 매체가 없었을 뿐 아니라, 교통이 불편하여 평생에 서울 한 번 가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그런 처지인데 경상도에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과거에 급제하고 중앙무대에 진출했을 때 갑자기 서울 말씨로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본디 말이란 어려서 형성되고 나면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조정에는 사투리 벼슬아치가 많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한데도 주인공들은 또박또박 표준어를 사용하고, 겨우 조연 몇 명만 사투리를 사용하여 재미를 돋우는 양념으로 꾸며 넣고 있다.
같은 경상도라고 해서 말씨가 같은 것이 아니다. 「했니껴 아했니껴?」처럼 ‘꺼’나 ‘껴’가 들어가는 방언은 주로 안동이나 포항 등지에서 사용하는 말이고, 「해써예 안해써예?」하며 말끄트머리가 살짝 들어 올리는 말투는 주로 대구 근방 사람들이 습관화된 말이다.
「아이라카모 아이다, 이기다 니끼가?」같이 마치 일본어를 듣고 있는 듯 착각에 빠지게 하는 억세고 윽박지르는 듯한 말씨는 부산사람이고, 「와카능교?」처럼 높은 톤에 마치 시비조로 들리는 말은 통영이나 거제 쪽이다. 언어전문가는 말씨만 가지고도 그 사람의 출신지역을 대번에 알아낸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경상도 청년이 서울에 있는 회사에 면접을 보러갔다. 면접장에는 서울출신과 부산출신 면접관이 있었다. 서울출신 면접관이 묻는다.
「서울에는 친척이 많은가?」 청년의 대답이 「고마 쎄리 삣씸니더」서울출신 면접관 못 알아듣고 옆에 있는 부산출신 면접관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부산출신 면접관이 통역하기를 「아따 천지 삐까리다 카네예」
우리나라 표준어 규정은 세 가지의 기준을 두고 있다. 첫째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 둘째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말 셋째,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이 되는 수도 곧 서울말로 한정하고 있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표준어 규정을 제정할 당시 서울 인구는 35만 명에 불과했다. 지금 인구는 천만 명이 넘고 있으니 순수한 서울 사람보다 거의 대부분이 지방 사투리를 사용하다가 모여든 사람들이다. 따라서 서울 사람이라고 해서 표준어만 사용하지 않는다. 표준어로서의 서울말은 거의 묻히고 말았다.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하고 공문서나 교과서에 사용을 의무화하는 것은 지역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므로 이는 행복추구권, 국민의 평등권,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지역 언어 보존 차원에서 학교에서 사투리를 가르치고 사투리를 공용어에 적극 편입시키자 취지로 낸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존재는 언어에 의해 형상화 된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김춘수의 꽃)」는 시의 의미처럼 사물의 양(量)은 언어의 양의 크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국어사전이 3권 정도의 분량이지만 일본의 국어사전은 그 양이 무려 30권정도가 된다. 이런 차이는 표준어정책과 관계가 있다. 우리는 방언을 표준어의 범주에 넣지 않지만 일본은 1949년 다양한 지역 방언을 모두 아우르는 공통어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어휘수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어휘 가운데 고유어는 겨우 20%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 사투리는 표준어에 밀려 나 있다. 언어 속에 정신이 있다고 한다면 고유의 언어를 잃어갈수록 우리의 정체성 또한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제는 표준어교육뿐 아니라 사투리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면 갈수록 잊어만 가는 우리말을 보존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거제 사투리 보존회」를 결성하고 거제 지역의 정서가 담긴 토속어를 찾아 수집해 두는 일은 후손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