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C 207년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켰을 때 아방궁을 불태웠는데, 석 달 동안 꺼지지 않았다고 하니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진(秦)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다. 중국을 영어로「China」인데 이는 「진(Chin)」에서 유래한다. 시황제가 살아서는 아방궁, 죽어서는 무려 50㎢ 넓이에 영원히 자신을 지켜줄 병마용갱(兵馬俑坑)을 세운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 시황제가 죽은 지 약 2,100년이 지난 1974년 3월에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 무덤이 발견되었다.
중국 역사상 최대의 폭군으로 불리는 시황제는 황제의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했으며, 무병장수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기원하여 서복(徐福)으로 하여금 선남선녀 3천명을 데리고 불노초를 찾게 하는데, 이들 일행이 거제 해금강까지 왔었다는 기록도 있다.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악정으로도 유명하지만 전국의 도량형을 통일하고 만리장성을 완성하였고, 군현제를 통해 중국 역사의 기초를 닦았다.
진이 천하를 통일하고 나니 수도 함양(咸陽)의 궁전이 협소해 새로운 궁성인 아방궁을 짓게 되는데 크고 작은 전우(殿宇)만 700여 개였고, 매일 방 한 칸에서 잠을 잔다 해도 죽을 때까지 다 못 잔다고 하니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중국 고고학 전문가들이 5년 동안 발굴 조사한 끝에 「아방궁은 실제로 없었다」는 결론을 내려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아방궁의 흔적을 못 찾았을 뿐이지 없었다고 단정하지 못한다고 반박하고 있어 아방궁의 미스터리는 아직도 진행형으로 둘 수밖에 없다.(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