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850의 이방 선지자와 그를 지지하는 왕 그리고 그 왕의 통치를 따르는 수많은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홀로서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려고 외롭게 부르짖던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어진 산이 바로 갈멜 산이었다. 850과 왕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몇 데시빌 이나 되었을까?
마치 이후 엘리야가 호렙산에 가서 하나님의 음성이 여기에 있는가 하여 착각했던 첫 번째 현상 곧 크고 강한 바람의 소리와 같지 않았을까? 성경은 그 소리를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었다”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이니 데시빌의 강도를 지시하는 바늘이 멈추어 버릴만한 소리가 아니었을까?
사울왕의 죄로 말미암아 새 왕을 찾아 기름부으려 나섰던 사무엘에게 첫 번째 보인 사람은 다윗의 장형 엘리압이었다. 그의 이름이 엘리“압”이듯이 사무엘의 눈에도 “압”도적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보인 사람이 엘리압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즉시 말씀 하시기를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사무엘, 그는 당대의 최고의 선지자요 우리 기독교의 너무도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도 하나님의 뜻이 키에 있고 외모에 있는 줄로 착각했다는 말이다.
엘리야에겐 두 번째 유혹이 왔다.
이번엔 전번보다 더 강력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앞에 일어났던 것은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정도의 바람이었지만 이번에는 산뿐만이 아니라 온 땅을 뒤흔들어 버리는 바람보다 초강력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설마 바람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런 강력한 지진 속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겠는가? 충분히 그렇게 판단되어질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또 아무리 귀를 기울여 보아도 그 속에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질 않았던 것이다.
엘리야의 마음은 초조했다. 분명히 이 시대를 향한 또 이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있을 것인데 그 메시지는 쉽게 나타나지 않지를 않은가! 사실 하나님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합당한 메시지를 들려 주셨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전엔 호세아 선지를 들어 말씀 해 주셨고 남쪽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도 예레미야를 들어 민족이 살길을 말씀해 주셨고 악한 왕 아합 때에도 미가야 선지를 통해서 아합의 살 길을 예 해 주셨건만 문제는 그때 마다 그 하나님의 음성을 전해 주는 선지자의 음성은 세미했고 하나님의 메시지가 아닌 거짓 선지자의 소리는 하늘을 찌르듯 컸기 때문에 어리석은 왕들이 그 소리를 분별치 못했다는 것이 문제요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아합 왕 때에는 어떠 했던가? 미가야 선지가 전쟁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 거짓선지자 시드기야는 철뿔을 들고 나가서 싸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왕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고 시드기야의 말을 들음으로 전쟁에서 죽고 말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크지 않았고 요란하지도 않았고 성경은 세미한 소리였다고 말했다.
이 세미한 소리를 찾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참 선지자 엘리야였던 것이다. 이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도 역시 크고 강한 바람에도 지진에도 지진 후 불에도 있지 않고 세미한 소리 거기에 있음을 명심하자.
그 세미한 소리가 작아서 나노입자 같은 극세미한 소리일지라도 그 소리까지 들리는 나노귀가 열리는 그리고 간장이 녹아나는 선지자 위정자 모든 국민이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