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일 조선산업의 발달로 신현읍 인구가 10만명을 훌쩍 뛰어넘으면서 신현읍은 4개 동으로 분동 됐다.
신현읍은 행정안전부의 분동 승인에 따라 신현읍이 장평동(장평동)과 고현동(고현동), 상문동(상동동, 문동동, 삼거동), 수양동(양정동, 수월동)의 4개 행정동으로 전환되면서 상동동, 문동동, 삼거동을 중심으로 상문동이 탄생된다.
상동리(上東里)
영조 45년(1769) 때 까지 용산을 사동이라 했고 아래의 상동은 남문방에 속하는 윗마을을 상동(上洞)으로 불렀으나 고종 32년(1895) 5月 26日 상동(上東)으로 바꾸었고 1915년 용산, 상동을 합쳐서 상동리(上東里)로 불렀다. 사동은 절이 없어졌으니 계룡산의 지리설(에 따라 용산이라 했고 상동은 고현의 윗마을이라는 뜻에서 불리고 있다.
○ 상동마을=고현 남문천을 경계로 남쪽에 이어지며 구천계곡으로 향하는 도로의 아래 위에 있고, 거제기독병원이 계룡산밑에 자리잡은 아래 상동이라 부르고 있으며 조금 남쪽에 도로의 서쪽위에 있어 웃 상동이라 부르고 있다.
○ 용산마을=영조 45년(1769) 사동방으로 마을 뒤에 큰절이 있어 절골이라 했는데 거제면으로 넘어가는 고자산치)의 계룡산을 오르는 곳이라 용산이라 바꾸었다.
○ 가매바위=상동의 동쪽 독봉산에 가마 모양의 바위가 있다.
○ 개여시바위=독봉산 대문바위 남쪽에 개여시 여우 모양의 바위가 있다.
○ 고자산재=용산 서남쪽 골짝기에서 계룡산을 넘어 거제면 동상리로 가는 옛날의 큰 길이였으나 너무 가파라 숙종 14년(1688) 계룡산 북쪽 서문고개에서 중허리로 김실령재를 개설한 후는 통행이 적어졌다.
○ 고현천=문동폭포에서 상동 동쪽으로 흘러 용산천과 상동천을 합쳐 고현만으로 이르는 길이 의 큰 내를 한내라 했는데 고현면때 고현천으로 바꾸었다.
○ 누에 머리등=상동 동남쪽 안장걸등 밑에 있는 누에 모양의 등성이다.
○ 담배밭골=상동 동쪽 가매바위 밑에 담배를 심었던 밭이 있었다.
○ 당산숲=상동(上東) 동북쪽에 자그마한 산이 있고 옛날 당산제를 지냈다는 숲이 있었다.
○ 대문바위=낙바위 동쪽에 대문 모양의 바위가 있다.
○ 독봉산=계룡사의 동쪽 고현천을 경계로 수월, 양정리의 서쪽 지역 중심부에 홀로산이 있는데 독봉산(獨峯山)이라하며 임진왜란때 장군이 올라가 지휘했다는 설로 독봉산(禿峯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 땅골=상동(上東) 서쪽의 홈대골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서낭당이 있었다.
○ 땅등=땅골 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그 밑에 땅등의 자그마한 촌락이 있다.
○ 땡피바위=탕건바위 북쪽에 땅벌의 집이 있었다.
○ 뿔바위=개여시바위 서쪽에 소의 뿔 모양의 바위가 있다.
○ 삼정자=상동(上東) 동북쪽에 있는 들판에 팽나무 한그루와 말채나무 두그루가 세곳에 시원한 정자를 형성했으니 농부들의 참을 먹거나 쉬는 곳으로 삼정자라 한다.
○ 서당등=땡피바위 북쪽에 있는 등성이 밑에 서당이 있었다.
○ 안장걸등=허리등 남쪽 홈대골에 있는 말의 안장 모양인 등성이다.
○ 약물바위=상동(上東)의 동쪽 송굿바위 밑에 약수터가 있었다.
○ 얼음밭골=땅골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늦은 봄까지 얼음이 녹지 않은 음지를 얼음밭골이라 한다.
○ 용소=상동(上東) 동쪽 한내에 용이 등천했다는 연못이 있다.
⊙ 문동리
옥녀봉의 서쪽 계룡산의 동쪽이 만나 고현천을 이룩했고 골짜기의 양쪽산에 높은 바위가 있어 대문의 기둥같다 하여 문곡이라 했는데 영조 45년(1767) 방리개편 때 문동이라 했다가 1915년 문동리로 법정되었으며 배합터, 골안, 동내골, 아래땀, 중땀 등 여러 자연촌락으로 이루어 있다.
○ 배합터=문동에서 동내골을 건너 양정리와 접하는 곳에 있는 촌락이다.
○ 골안=배합터의 서쪽 골짜기 안에 문동저수지가 있고, 옥녀봉에서 쏟아지는 문동폭포의 아래에 관광휴양지를 조성한 곳의 고랑 건너 북쪽에 있는 외딴 마을이다.
○ 동내골=문동 아랫마을 동쪽 고현천의 냇가에 있는 마을이다.
○ 아래땀=문동리의 중심마을이며 북으로 고현, 동으로 양정, 남으로 삼거로 나뉘어지는 삼거리로 삼룡초등학교가 있다.
○ 중땀=문동저수지 밑에 있는 마을로 문동폭포와 삼거리로 나뉘어지는 곳이다.
○ 다리빗들=골안 남쪽 앞에 있는 등성이로 지형이 다리미처럼 생겼다.
○ 등너머골=만리성골 동쪽의 등성이 너머에 있는 골짜기다.
○ 만리성골=문동과 삼거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골짜기에 옛날 만리장성의 터가 있었다.
○ 문동저수지=1950년 11月 27日 거제도 포로수용소 설치에 따라 경비부대와 포로의 용수공급을 위하여 포로의 작업으로 건설한 저수지로 1956년 수용소 철수후 수력발전하여 군청소재지에 전기를 공급했으며 육지로 부터 송전된 후에는 농업용수로 공급하고 있다.
○ 문동폭포=옥녀봉에서 흐르는 자연의 맑은 물이 20m의 암벽에 쏟아지는 폭포수는 늪과 못을 이루고 물소리를 골짜기 안을 울리며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같이 용이 등천했다는 거제 유일의 폭포이다.
○ 문암=문동의 중땀 양쪽산에 문의 기둥모양의 높이 10m되는 큰바위가 있어 서로 마주보고 있으니 이를 문바위라 하고 밑의 마을을 문골이라 했다.
○ 불당곡=큰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불당이 있었다 함.
○ 설멧재=문동의 남쪽에서 삼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거제도를 남북으로 가름하는 중심이며 북으로 고현천, 남으로 구천계곡으로 흘러 산양천으로 흘러가는 분기점의 고개이다.
○ 시루밑등=동내골 동쪽에 있는 등성이로 지형이 시루를 엎어 놓은 모양으로 생겼다.
○ 아홉사릿재=골안 북쪽에 있는 고개로 너무 가파라 구비가 아홉곳이나 된다 함.
○ 왜곶이=아랫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에 옛날 기와를 구웠다는 곳이다.
○ 용주사=삼거리 돌고개의 구천계곡에 1970년 구천동 사곡에서 구룡산 용주사로 이건하여 거제 관광의 명소였는데 1987년 구천댐으로 문동의 생약산에 옮겼다.
○ 용천=아랫마을 동북쪽에 있는 깊은 연못으로 옛날에 용이 살고 있었다는 전실이 있다.
○ 울음이재=골안 동쪽에서 아주 넘어가는 20리의 큰재로 산정에 오르면 골짜기가 있어 앞산을 바라보며 가로 질러가는 하늘만 보이나 옛날 거제 동서로 통하는 대로였다. 외롭게 서로돕고 살던 두 남매가 외갓집에 가기 위해 이 고개에 오르니 갑자기 소나기를 맞으면서 다음 동성이에 이르자 잠깐 쉬는 동안 누나를 바라보니 비에 적은 몸매에 흥분하자 무례한 짓이라 여겨 누나를 먼저 가게하고는 돌로 성기를 찍어 죽었으니 다시 돌아와 본 누나는 한없이 울면서 이 재를 넘어 갔다는 슬픔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 제사골=동내마을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라 함.
⊙ 삼 거 리
거제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가장 높은 분지에 자리한 삼거리는 영조 45년(1769) 방리개편할때 삼거방이었다. 동쪽은 일운면으로, 서남은 동부면, 북은 고현으로 통하는 삼거리로 지금은 도로가 포장되었으며 분지와 계곡에 따라 자연촌락이 많아 윗땀, 중땀, 아랫땀, 감나무골, 다리골, 동가래, 배합골, 복골, 새밭골, 언텃골, 음지몰 등 11개의 외딴 촌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 윗마을=삼거리의 서불쪽 높은 곳에 비교적 집단으로 사는 마을이다.
○ 중땀=윗마을과 아랫마을의 중간에 다리가 있는 곳이며 일명 봉시덕골이라 한다.
○ 아랫마을=세갈래의 삼거리에 가까운 곳에 큰길과 접하며 집단으로 많이 사는 마을이다.
○ 감나무골=서쪽 골짜기에 있고 감나무가 많았다 한다.
○ 배합곡=삼거리에서 문동으로 넘어오는 배합치 밑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 복골=배합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가 바르고 바람이 없는 좋은 곳이라 하며 새풀 밭이 있어 새밭골이라 부르기도 한다.
○ 언텃골=윗마을 동남쪽에 있고 옛날 원두막이 있었으며 일명 음지마을이라 한다.
○ 꽃밭등=윗땀과 중땀의 동북쪽에 있는 등성이로 봄이면 온 산이 진달래꽃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 돌고개=신현읍과 동부면의 경계지점에 암벽의 산길을 돌고개라 하며 울창한 수림과 아름다운 구천계곡 흐르는 구슬같은 맑은 물에 잠깐 쉬어가는 고개로 계곡벽에 구룡산 용주사가 있었으나 1987년 구천댐이 준공되자 모두 수몰되었으며 용주사는 문동리 생약산으로 옮겼다.
○ 덜겅등=삼거리 동쪽에 있는 등성이는 바위더미가 많은 너설이 있는데 이를 덜겅등이라 한다.
○ 무점골=윗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에 옛날 대장간이 있었고 철물의 농기구를 파는 점포가 있었다.
○ 물맞는골=윗마을 서쪽 골짜기에 피부병에 좋은 약수터가 있었다.
○ 반송이재=삼거리에서 일운면 지세포리로 넘어가는 10리 넘는 긴 재로 옛날 반씨와 송씨의 두친구가 함께 곡식을 팔고 바다고기를 사서 넘나들었다하여 반송이재라 불렀다한다.
○ 뱅기박찬등=아랫마을 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1914년 일본의 비행기가 추락하여 박살되었다고 전래되고 있다.
○ 벌바위=윗마을에서 명진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서쪽에 벌집 모양의 큰 바위가 있다.
○ 보라지 막터=윗 땀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에 보라지라는 가난한 사람이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오두막 집터가 있었다.
○ 빈대절터=아래마을 뒷산에 있는 골짜기에 옛날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너무 많아 불을 지르고 망했다고 전래되고 있다.
○ 삼거리 내=삼거리의 동쪽 반송이재와 북쪽 배합치, 서쪽 윗마을에서 흐르는 계곡수가 합쳐서 남쪽 돌고개 구천계곡으로 합류하니 이를 삼거리 내라 부른다.
○ 삼정자=삼거리의 앞 들판에 정자나무 3그루 있는데 팽나무, 말채나무로 농군들이 쉬는 곳이라 삼정자라 부른다.
○ 얼음 어는골=윗땀 남쪽에 있는 골짜기는 울창한 숲으로 늦봄까지 얼음이 녹지 않은 계곡이 있다.
○ 용둠벙=감나무골 남쪽에 용이 등천했다는 연못이 있다.
○ 제식바위=윗땀 서쪽산에 있는 큰 바위밑에서 동민들이 산신제를 지내 안과 태평을 빌었다한다.
○ 중산골=윗땀 동남쪽에 음지마을이 있고 그 골짝이에서 나이 많아 죽은 중의 사리를 채집하기 위하여 참나무 장작불로 화장하던 곳이라 한다.
○ 진등재=윗땀에서 명진리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등성이가 너무 길어 진등재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