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동생으로부터 새 집을 마련했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전화를 받고 축하도 할 겸 찾아가 보았다. 좁은 집에 살다가 서른 평이 넘는 집으로 이사를 온 동생은 행복에 젖어 있었다.
요즘은 생활공간이 주로 거실이기 때문에 거실 면적을 넓게 하였고 큰 창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뒤로는 산을 가까이하고 있어 바람이 불면 신선한 숲 향기가 날아올 것 같은 좋은 위치다. 가재도구도 구색에 맞추어 거의 새로 장만한 듯했다.
대형 벽걸이 TV와 장식장이 벽면을 차지해버렸다. 장식장 안에는 국적도 이름도 모르는 양주가 스무 병도 넘게 진열되어 있었고 옆에는 인삼주 병도 있었다.
“남편이 술을 좋아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취미로 술을 모은다고 했다. 7~80년대 무역이 자유롭지 못한 때에는 원양어선이나 외국 근로자들이 귀국하면서 한두 병 가지고 들어온 양주나 외제 라이터가 인기가 높아 선물로 주고받던 때도 있었다.
양주는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술인 줄만 알았고 서민은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요즘은 마트에 가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어 희소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거의가 가짜라는 얘기도 있는데 가짜일지도 모를 양주를 모으고 시커먼 술병을 처다 보는 별난 취미가 있다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쪽 빈 공간에 책장을 놓고 책을 꽂아놓으면 훨씬 잘 어울리고 거실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라고 일렀다. 그러면서 독서로 교양과 정서를 쌓으라고 강조했다.
그랬더니 동생은,“오빠! 요즘 책 보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또래 아줌마들 시간 나면 모여서 점백 고스톱은 쳐도 책 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세상입니다.”
TV와 인터넷에 밀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과 오락의 필요성도 알고는 있지만, 이 나이에도 문학을 공부하면서 독서는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간다움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왔던 나로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지난해 조선일보사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공동으로 “거실을 서재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독서 권장 운동을 일으킨다는 것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다.
새마을 운동이 우리 주변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운동이었다면, 독서는 우리 국민의 정서적 빈곤을 치유하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정신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으로부터 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참여와 특히 가정의 주체인 주부들의 책 읽기를 호소하였다고 하지만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한다.
세걔 각국의 독서량을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1위는 인도이고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30개국 중에서 꼴찌였다고 한다. 산업사회가 발전 되면서 먹고살기가 바빠서 멀리하게 된 것일까.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책에는 삶의 지혜가 있고, 주부의 교양에 따라 가정이 건강해지고 활력이 생기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책을 달고 산다는 말도 있는데 좋은 책을 골라서 많이 읽어라.”라고 말하고 돌아왔지만, 우리 사회의 독서 문화는 언제쯤 선진국 대열에 끼어들 수 있을는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