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9일 광주고법 제1가사부(선재성 부장판사)는 원고 이씨(42·여)가 피고 김씨(46·남)를 상대로 낸 이혼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이혼을 불허한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이혼을 허락하는 판결을 내렸다.
원고 부부는 지난 1990년 12월 혼인신고 후 2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남편의 음주와 외박 등으로 불화가 생겼고 이씨는 1997년 가출한 뒤 남편과 따로 살아왔다.
원고는 다른 남자와 동거하면서 지난해 2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고 이혼을 청구했지만 1심에서 유책 배우자의 청구라는 이유 등으로 기각됐다. 이씨는 항소를 했고 항소심 재판부가 이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이혼을 허락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상 이혼을 인정하는 이론적 근거로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있다.
유책주의란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는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예를 들면 외도를 한 당사자의 이혼청구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파탄주의란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 이혼청구 당시 혼인생활이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에 있다면 이혼을 인정하는 이론이다.
전통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남성중심의 결혼생활에서 아내의 잘못보다 남편의 잘못으로 인한 갈등이 많았던 만큼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남편이 이혼까지 요구할 수 있도록 한다면 여성들의 지위가 보장되지 못할 뿐 아니라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되어 이를 최소화 하고자 유책주의를 채택해 왔다.
그런데 최근 일부 판사들은 “혼인의 본질은 부부간 애정인데 애정이 없는 혼인관계를 국가가 지속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
시대가 변해 이혼소송 중 여성이 원고인 비율도 더 많아진 만큼 약자인 여성의 보호를 위해 유책주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기에 파탄주의 도입을 논의해 봐야 한다”며 “국가가 ‘죽어버린 혼인’에 호흡기를 달아놓고 ‘살아나라’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파탄주의에 기한 판결을 내리기도 하고 있다.
위 이혼청구사건에 있어서는 내부적인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위 사건은 이혼청구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친생자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처가 혼인중에 포태한 자는 부의 자로 추정하며 법적으로 혼인개시 200일 후 혼인종료 300일전에 태어난 자녀는 혼인중의 자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위 사례에서 본다면 다른 남자와 동거중에 태어난 장애인 자녀는 친아버지인 동거남의 자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친아버지의 등록부에 출생신고를 할 수 없고 모의 전남편인 김씨의 등록부에 출생신고를 한 다음 친생부인청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원고는 자녀의 출생신고를 위하여 본인의 동거사실이 알려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혼청구를 할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현재 세계적인 추세는 파탄주의이며 유책주의를 채택하는 국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에서는 어느 제도가 더 바람직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미 파탄이 난 혼인관계에서 한 쪽의 책임이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도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어서 국가가 법률로만 부부를 묶어놓고 무늬만 부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간에는 어떤 경우에도 외도를 할 이유, 때려할 이유는 없으므로 외도를 한 당사자의 이혼청구, 상습적인 폭행을 행사하는 당사자의 이혼청구등 파탄의 책임이 분명한 배우자의 일방적인 이혼청구는 인정되지 않아야 하며 상대 배우자에게 선택권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