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둔다고 좋은 건 아니다
서둔다고 좋은 건 아니다
  • 거제신문
  • 승인 200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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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지역 보육시설들이 현장 체험학습을 이유로 대전, 양산, 전북 무주 등 원거리까지 아이들을 차에 싣고 다녀온다니 참으로 걱정스럽다. 

보육시설에는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영유아들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한 좌석에 두 명의 어린이를 앉히는 경우도 있다니 참으로 위험천만이다. 조기교육으로 보다 나은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일부 부모들이나 보육시설의 욕심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 같은 조기교육이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습성’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참으로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

어찌 보면 이 같은 조기교육도 한국인의 빨리빨리 심성이 가져다 준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때론 빠른 게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빠른 것이 결코 좋을 수만은 없다.

우리는 공사의 견고성 보다 공기단축을 자랑삼는 국민이다. 조급함이 우리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빨리빨리 습성’은 결과적으로 산업화에 투사(透寫)되어 산재의 세계 1등이 되고 교통현장에 투사돼 교통사고 1등 나라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5분, 10분이면 차례대로 통과하는 줄서기를 참지 못해 새치기하기 예사며 불과 몇 초만 기다리면 되는 걸 참지 못해 차선을 바꾸다 사고를 내고 평생을 후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모두가 서두르는 우리국민들의 고질적인 ‘빨리’의 병폐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그의 인생 1/3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낭비할 만큼 바보라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인의 생활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은 일생을 사는 동안 5년간 줄을 서는데 소비하고 신호를 대기하는데 6개월을 낭비한다는 통계도 있다. 여유를 가져야 각박하지 않는 세상이 가능하다. 느긋하게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느긋하게 기다리는데 있어서는 지구상에서 유태인들만큼 끈질긴 사람들은 없다.

예멘에 흩어져 살았던 유태인들은 2천년 가까이 외부의 문명세계와 격리된 채 언젠가 약속의 땅에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미국의 저명한 교육철학자 ‘듀이’는 아이들은 네 가지의 충동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충동을 잘 발현시키는 것은 좋은 교육이지만 억누르면 나쁜 교육이라 했다. 네 가지 충동이란 구성적 충동, 표현적 충동, 사회적 충동, 탐구 실험적 충동이라고 했다.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격(格)에 맞는 교육이 가장 필요하다. 여유를 갖고 어린이들의 충동을 발현시키는 교육, 특히 연령에 맞는 교육을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영유아는 그들에게 맞는 교육을, 초등학생은 그들에게 맞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안전사고의 위험성을 감내하며 굳이 먼 곳의 동물원이나 스키장까지 영유아들의 현장학습을 강행한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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