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야기
방송이야기
  • 거제신문
  • 승인 2009.0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군자 거제수필문학회원

근 반년 가까이 나라를 시끄럽게 하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많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선거다. 선두 대열 외에는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난립했다.

향후 국가 발전을 위해 어떻게 정국을 운영하겠노라는 정책과 비전 제시가 아닌, 상대 후보의 과오와 약점에 대한 비방과 인신공격이 판을 치는 아직도 선거 후진성을 면치 못하였다.

후보들은 사활을 건 피 말리는 싸움의 연속이지만, 그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들은 어서 선거가 끝나고 평온을 되찾기 바랄 뿐이다. 선거 때만되면 나에게는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부끄러운 추억이 있다.

60년대 중반, 대통령 선거라 기억된다. ○○방송국에 근무하던 시절의 일이다. 투표가 끝나면 각 방송사들은 개표소로 가서 개표 결과를 실시간으로 중계 방송한다.

TV가 별로 보급되지 않아서 거의 라디오 방송에 의존하던 때다. 요즈음은 개표 과정이 자동화되어 시간이 단축되므로 밤 열 시경이면 당락의 윤곽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그때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에 의존했기에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는 것이 비일비재했다.

도청 상황실 개표실황 중계방송 아나운서로 나가 있었다. 개표 중반이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담당 기자는 보도할 집계원고를 보내주지 않고 감감무소식이다.

몇번 마이크가 넘어왔으나 ‘이곳 상황실은 별 사고 없이 평온한 가운데 각 개표소로부터 넘어온 자료를 집계하는 중입니다.’라는 멘트로 적당히 얼버무렸다. 다시 마이크가 넘어오는 순간에 상황실 한쪽 벽면에 설치한 집계판의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 개표 종합 상황실입니다. 지금까지의 개표 상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개표 상황판의 숫자를 차근차근 읽었다. 마이크를 넘겨주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에 전화가 왔다.

‘아뿔싸! 내가 방송 사고를 쳤구나’ 하고 정신이 들었다. 이미 전파를 타고 나간 뒤라서 후회한들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방송이 나간 후에 메인 스튜디오에서 그 사실을 감지하고 신속히 지적해 주었다.

너무나 창피해서 ‘시력만 나빴어도 그 멀리 있는 집계 판 숫자를 볼 수 없었을 텐데… ’ 생각만 해도 그 사건이 너무나 생생할 뿐 아니라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한 부끄러운 기억이다.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할 수가 있다. 더러는 실수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지만, 그로 인해 자기는 물론이거니와 타인에게도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이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기보다 변명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자기의 실수를 내 탓으로 인정하고 이해를 구한다면 훨씬 살맛나는 세상이 되리라 생각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