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으로 자랑스럽고 대단한 일이다. 한마디로 참 잘했다. 거제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는 쾌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단 예도의 「거제도」 (부제 : 풀꽃처럼 불꽃처럼·손영목 원작·이삼우 연출)가 지난달 16일 경북 구미에서 폐막된 제27회 전국연극제에서 금상(행정안전부 장관상)을 수상한 데 대한 칭찬은 아무리 과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연극의 주연 배우이자 연출가인 이삼우 연극협회거제시지부장이 연기상과 연출상을 거머쥐는 또 한 번의 큰일을 해냈다.
거제는 사실 연극의 불모지였다. 아무도 연극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을 때 「극단 예도」라는 이름을 걸고 젊은이들이 모였다. 없으면 없는 대로,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그냥 연극이 좋아서 뭉친 이 사람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예술인들이었다. 그동안 극단 예도는 2007년 「흉가에 볕들어라」 로 전국연극제 금상을 받는 등 전국연극제에 두 차례 참가해 모두 금상을 차지했다.
2.
지난달 6월 5일부터 15일까지 통영이 후끈거렸다. 11일간 통영을 연극의 바다에 빠뜨렸던 「통영연극예술축제」로 전국의 연극애호가들이 통영을 찾았다. 어쩌면 통영이 청마 유치환을 내세운 문학의 도시, 윤이상을 배출한 음악의 도시에 이어 연극의 도시로 재조명되는 문화적 시너지는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2008년은 한국 신연극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에서 최초의 신극인 「은세계」가 공연된 지 꼭 100년을 맞은 해다. 이를 때맞추어 통영은 「통영연극예술축제」를 개최했고 올해 두 번째 행사를 치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게 있다. 1,000만원의 상금을 내건 「동랑희곡상」공모다. 주최측의 설명에 의하면 「한국 신연극 태동과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통영 출신 연극예술가 동랑 유치진의 연극정신을 기리고 이어나가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고 말한다.
3.
1990년 11월10일 통영문화재단에서는 동호동 바닷가 남망산 공원에 동랑의 흉상을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거제에서는 동랑에 대하여 이름조차 들먹이지 않을 때 통영은 동랑을 통영사람으로 만들어 놓는 기지를 발휘했다. 동랑이 통영출신이라면 그 보다 세살 아래인 청마의 출생지 논쟁은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사실 아직도 문단사에는 동랑의 출생지를 통영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동랑의 흉상이 수모를 당하고 만다. 친일작가의 흉상을 충무공의 동상이 있는 남망산에 함께 둘 수 없다는 이유로 철거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유치진 흉상 철거 대책위원회」까지 구성되어 강력히 항의하자 결국 1995년 2월 26일 동랑의 흉상이 철거되고 만다. 그러던 사람들이, 그들이 친일작가라고 비난하며 만들어졌던 흉상을 끌어내린 사람들이 통영연극제라는 문화상품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동랑이 필요했고, 따라서 그의 이름을 건 희곡상을 만들고 전국적인 공모에 나선 것이다.
4.
거제는 그동안 동랑에 대해 너무나 무심했다. 동랑이 거제 둔덕골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심지어 친일이라는 이름 때문에 입도 벙긋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거제에서는 버려둔 인물이었다.
2002년인가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거제시청 소회의실에서 동랑에 대한 무슨 간담회 같은 게 있었던 게 처음이고 마지막인 것 같고 그 후 동랑에 대한 논의조차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무심한데 통영은 이제 당당하게 동랑의 이름을 내걸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13일 본지에 「부끄럽지만 당당하게」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필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랑의 친일에 대하여 숨기거나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변명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욕하고 비난하고 반역자로 몰아도 거제는 동랑을 안고 가야 한다. 그의 아픔에 대하여 감싸고 안아줄 땅은 거제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는 동랑청소년연극제가 있고, 서울예술대학에는 동랑예술극장이 있지만 거제에는 동랑에 대해 너무나 무심하다. 그 흔한 연극제 하나 없다. 그게 더 부끄러운 일인지 모른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