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동 지명 바로알기
고현동 지명 바로알기
  • 최대윤 기자
  • 승인 2009.07.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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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지역은 세종 14년(1432) 거제현의 읍터였다가 현종 5년(1664) 현아를 서부면(현 거제면)으로 옮긴 후 고현면이라 개칭했으며 영조 45년(1769) 방리 개편 때 남문, 서문방(서문)으로 분리된 후 1915년 고현리로 개칭했다.

고현지역은 거제의 중심지역으로 발달해 행정리는 서문1ㆍ2ㆍ3ㆍ4동, 동문, 남문1ㆍ2동, 중앙, 성내, 성동, 성림, 신성, 중곡 등 13개의 행정리가 형성됐다.  고현동의 지명은 세종 14년(1432)에 지은 고현성(거제읍성)에 따른 지명이 특징이다.

○ 고현성

고려말엽 원종 12년(1271) 왜구의 침범으로 거제현의 거제도 백성들은 모두 거창의 가조현으로 피난갔다가 조선세종 4년(1422) 태평성세로 사등성에 돌아왔지만 성이 협소해 고정부곡에다 세종 14년(1432)에 관아 40칸을 건립하고 고현성을 쌓아  거제읍성이라 칭했다. 이후 현종 5년(1664) 고현면과 함께 고현성으로 개칭했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5월7일 옥포대첩에서 왜선 26척을 격침당한 왜 패잔병이 거제읍성(고현성)을 공격해 5일후인 12일 성주 윤승보가 전사하고 함락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현종 5년(1664) 고현성을 폐성하고 관아를 서부면(거제면)으로 옮기면서 부터 고현성이라 부르게 됐다.

1950년 6ㆍ25 사변으로 11월 27일 UN군 거제 포로수용소설치에 따라 성벽을 헐어 골재로 활용 둘레 2,045m에서 계룡산 밑에 남아있는 740m의 성벽과 성내 2만7,141㎡를 1979년 5월9일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했고 허물어져 있는 성벽을 복원했다.

○ 서문마을 = 세종 14년(1432)에 거제읍성(고현성)을 짓고 읍의 터로 정했으나 삼성조선소의 창립으로 서문 1,2,3,4동으로 분리됐다.

○ 동문마을 =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고현성의 망루가 있던 곳으로 폐성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944년 고현출장소 설치로 동문구가 됐다.

○ 남문마을 = 고현성이 있었으며, 고종 26년 일운면으로 개칭하고 1913년 처음 면사무소가 있었으나 1928년 1월 1일 지세포로 옮겼다.

○ 중앙(중앙)마을 =거제읍성 이었던 고현성의 중심부이고 신현읍사무소와 거제신문사가 있다.

○ 성내(성내)마을 = 고현성의 상단이며 현 거제시청이 있는 자리다. 성의 하단은 포로수용소 설치로 없어졌고 상단 잔존 둘레 740m는 거제시청 옆에 복원 돼있다.

○ 성동(성동)마을 = 동문마을은 거제의 사통팔달하는 요충지이고 고현천 건너 금곡촌이 있다.

○ 성림마을 = 고현시장이 있는 마을이고 옛날 방풍의 송림이 있었다.

○ 신성(신성)마을 = 고현만 매립지의 중심상가와 시외버스 정류장이 생겨나 신성이라 부른다.

○ 중곡마을 = 본래 바닷가의 중통곡으로 항구가 통모양으로 깊숙히 들어와 통영과 마산의 여객선 기항지였으나 고현만 매립으로 APT단지의 중심지가 됐다.

○고현교 = 본래 거제현의 큰 내를 한내라 했으니 지금도 1917년에 가설한 한내 다리라 부르고 있으나 고현천에 고현교로 개칭했다.

○ 고현만 = 본래 거제현 터의 앞바다로 읍성을 막아주는 바다이니 한해만이라 했으나 1915년 법정동리령에 따라 바뀌어 졌다.

○ 고현장 = 본래 거제에는 아주, 읍내(거제면), 고현, 하청의 내게 시장이 있었는데 주로 우시장이 많았다. 또 농공산품 봇짐장수가 많았다. 특히 고현시장을 중심으로 매월 5일과 10일에 수많은 상인과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 금곡(김곡)마을 = 계룡산과 독봉산은 마주치고 있으며 한내 건너 산 밑으로 있는 촌락으로 동문) 마을에 속하며 옛날 금강이 있었다 함.

○ 김현령치비 = 현종 5년(1664) 거제현아를 서부면으로 옮겼으나 거제면과 고현사이에 왕래가 많았지만 계룡산이 경사가 높아 서문 고개에서 계룡산 중허리를 북서쪽으로 가로질러 열마지기 골짜기를 지나 화원 마을로 통하는 길이 8㎞ 폭 2m의 신작로를 숙종 14년(1688) 거제현령 김대기가 개설하자 과도한 부역과 질병으로 고통스러운 현장을 안렴사가 책해 현령을 파직시켰다. 훗날 계룡산 중허리에 신작로를 사람들은 김실령재라 불렀고 1930년 서문고개에 김현령치비를 후손 김계윤(의성금씨)이 비석을 세워 보존되고 있다.

○ 문절사 = 거제반씨 시조 반부와 선무원종공신 반중인, 반중경을 봉사하는 사우를 반씨재실이라 하며 서문마을 도론곡의 거제공설운동장 북쪽에 있다.

○ 북문터 = 서문 동북쪽에 고현성의 북문이 있었으며 일명 시구문거리라 해 죽은 사람의 시체가 나가는 곳으로 현재는 동문터라 하고 있다.

○ 서당때기 = 서문 남쪽에 옛날 서당이 있었다는 논이다.

○ 선창마을 = 서문 북쪽 고현만의 선착장이 있었고 여객선과 어선들이 드나들고 했으나 현재는 매립되어 바다와 멀어졌다.

○ 옥안때기 = 서문의 남쪽 계룡산 밑에 위치하고 있는 논으로 거제읍성 때 감옥이 있었다.

○ 거제 포로수용소

1950년 한국전쟁으로 11월 27일 공산군의 포로를 수용하기 위해 고현지역 360만평에 UN군이 수용소를 설치해 북한 인민군 15만고 중공군 2만, 의용군 3천 등 모두 17만 3,000명을 수용했는데 반공포로를 분류해 육지의 7개 수용소에 28,278명을 옮겼다. 휴전을 앞둔  1953년 6월18일 0시에 2만7,389명을 석방했다.

1953년 7월29일 휴전에 따라 철수했으며 현재 유적이 18동 잔존하고 임시유적관을 건립해 거제지역의 특색있는 관광자원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일한 UN군의 유적이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 충분하다.

○ 의상대 = 계룡산 꼭대기에 있는 절터로 신라 때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곳이며, 돌담, 샘, 대밭이 있다.

○ 장기바위 = 의상대 북쪽에 있는 큰 바위에 의상대사가 장기를 두었다하며 바위에 장기판 모양의 흔적이 남아 있다.

○ 찰떡배미 = 서문 서쪽 도론골에 있는 논으로 고종 22년(1886) 을유년흉년에 찰떡 한 가래와 바꾸어 연명했다는 구전이 있다.

○ 죽바위 = 장기바위 서쪽에 공중을 돌리는 죽방울 모양의 둥근 바위다.

○ 탕건바위 = 남문 남쪽 계룡산에 탕건모양의 바위가 있다.

○ 지석 홈 골 = 남문과 상동사이의 골짜기에 큰 돌을 쌓고 그 위에 홈 대를 얹어 논물을 끌어온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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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2009-09-29 10:28:17
역사를 되돌려 보고 시민들에 게 문화공관 을 만들고 관광객 들에 거제 의
오랜 문화 를 관광 상품 화 면에서 옛 성들 의 상징 성을 복원 하면 좋겠다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