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日蝕)
일식(日蝕)
  • 거제신문
  • 승인 200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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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의 일(日)은 해를 뜻하고, 식(蝕)은 「좀먹을 식」으로 벌레가 해를 갉아 먹는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한자어다. 실제로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 불개가 있었다고 믿었다. 어둠의 나라 왕이 해와 달이 탐이 나서 불개를 시켜 물어오게 했다. 그런데 불개가 해를 삼키니까 너무 뜨거워 입에 넣었다가 내뱉는 게 일식이고, 달을 삼키니까 너무 차가워서 먹었다가 내뱉는 게 월식이라고 생각했다.

본디 동양권은 태양문화라기 보다는 달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다. 캘린더(calendar)를 일력이나 해력이라 하지 않고 달력이라 하는 것도 그렇고, 시집가기 전에 처녀가 달을 보고 달의 정기를 흡입하는 흡월정(吸月精)로 부부 속궁합은 물론이고 자녀생산까지도 달의 정기와 관련지었다.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것도 월하노인(月下老人)이고, 달에 옥토끼를 살게 하는 것도 태음문화의 소산이다.

우리 설화는 대부분 달과 관련하여 만들어졌지만 태양과 관련된 설화는 「연오랑 세오녀」가 유일하다. 신라 제8대 이사금 4년(157년)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이들이 바위에 실려 일본으로 가 그들의 왕이 된다. 부부가 떠난 후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을 때 세오녀가 짠 고운 비단으로 제사 지내자 다시 해와 달이 빛났다는 이야기로 박인량(朴寅亮)의 수이전(殊異傳)과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가 최초의 일식에 관한 기록이라고 보아진다. 옛 사람들은 일식이나 월식을 우주의 쇼로 보기보다는 왕이 선정을 베풀지 못하여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성군(聖君)으로 여기는 세종임금 때 20번의 일식과 37번의 월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왕의 선정과는 무관한 것 같다.

지난 22일 오전에 2시간30분 동안 태양의 약 80%가 가려지는 부분일식(部分日蝕)이 61년 만에 나타났다. 다음 일식은 26년 후에나 볼 수 있다는데 장마 중에 우주의 장관을 보여주기 위해 때마침 날씨조차 잠시 비를 멈추어 주었다.(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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