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의 행복-자전거
두 바퀴의 행복-자전거
  • 거제신문
  • 승인 2009.08.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일광 칼럼위원

60년대 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그 중 참으로 신기하게 다가온 것이 자전거였다. 그렇다고 어느 집이나 자전거를 쉽게 가질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나마 좀 산다는 집이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마을 전체에 한두 대 있을까 말까했으니 자전거가 있는 집의 아이는 대단한 위세를 부리곤 했다.

저녁이 되면 학교 운동장에 친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노라면 친구가 무슨 선심이라도 쓰듯 한 번 타보라는 그 한마디에 온 몸이 소름이 끼칠 듯이 파고들던 감격의 전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자전거가 타고 싶어서 온몸이 스멀스멀할 때면 그동안 어렵게 아낀 용돈으로 고현에 가면 1시간에 20원하는 대여 자전거방을 이용하는 일이다.

하청에서 고현까지 지금처럼 아스팔트길이 아니라 돌멩이가 발에 걸리는 신작로였고, 어쩌다 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뽀얀 먼지를 송두리째 뒤집어 써야 했지만 그래도 자전거를 타는 그 기쁨과는 바꿀 수 없었다. 고현까지 30리 길을 달려가서 10원주고 겨우 30분 자전거를 타고 나면 다시 30리 길을 되돌아 왔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겨우 70불 정도였고 자장면 한 그릇 값이 15원,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10원이었으니 자전거 한 시간 빌려 타는데 20원이면 거금이었다.(사실 이 가격이 꼭 정확한지는 자신이 없다)

자전거의 추억은 그렇게 내 유년의 삽화가 되어 어른이 된 지금에도 자전거만 타면 밀려드는 행복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요즘 TV에 유난히 눈길을 끄는 광고 하나가 있다. 쿠바의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가난한 형과 동생이 다른 아이들이 타고 있는 자전거를 보며 부러워한다. 형은 동생에게 자전거를 사 주고 싶지만 소년의 호주머니에는 겨우 5달러밖에 없었다.

두 소년은 자전거를 경매하고 있는 광장에 나가 자전거가 소개될 때마다 ‘5달러!’를 외친다. 그러나 자전거를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자전거가 나올 때마다 소년이 외치는 ‘5달러!’ 소리는 모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마지막 파란색 자전거가 나왔다. 소년은 또 다시 하늘을 향해 손을 내 저으며 “5달러요! 5달러요!”를 외치기 시작한다. 애절한 외침에 어른들은 그제야 소년을 돌아보게 되고 소년을 위해 어른들은 마지막 경매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 때 할아버지 한 분이 슬그머니 손을 들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얼른 그 할아버지의 팔꿈치를 잡아 아래로 당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소년은 겨우 5달러에 자전거를 낙찰 받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뻐한다. 그리고 형은 동생을 자전거에 태우고 뒤에서 밀어주며 달리는 행복한 미소를 통해 ‘마음을 열면 따뜻한 세상이 시작됩니다’라는 광고 카피와 매치 시킨다.

자전거는 1790년 프랑스 사람인 콩트 드 시브락에 의해 발명되었다. 나무로 만든  두개의 바퀴를 이용하였으나 너무 무겁고 방향전환이 쉽지 않아 일반화되지 못하다가, 이후 앞바퀴로 방향을 바꾸는 자전거가 개발되고, 1886년 공기 타이어 바퀴가 발명되면서 자전거는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자전거가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20세기 개화기 때 서양의 선교사에 의해 전래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자전거 역사는 100년에 불과하다.

한 때는 모든 교통수단의 대부분을 자전거에 의존하기도 했지만 산업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전에 밀려 자전거는 잊혀져가는 물건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자연환경’과 ‘웰빙’이라는 저탄소 녹색성장 트랜드와 더불어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의 건강증진과 맞물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lifestyle)로 변해가고 있다.

또한 너무나 헐떡이며 살아온 ‘빨리 빨리’ 문화에서 ‘느림의 미학’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기에는 이 보다 좋은 기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거제의 어느 곳에서도 마음 놓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없다는데 있다.

바람을 가로지르며 온 몸으로 느끼는 상쾌함도, 게으를 권리를 찾는 느긋함도, 패달을 밟는 만큼 앞으로 나가는 근육의 섬세함도 거제에서는 가질 수 없다는 이 억울함을 어쩌면 좋으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