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검을 쓸 때이다”
“이제는 검을 쓸 때이다”
  • 거제신문
  • 승인 2009.08.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드온은 300용사를 뽑기 위해 두 번이나 시험을 거쳤다. 첫 시험에서 2만2,000명이 떨어지고 두 번째 시험에서 9700명이 또 떨어졌으며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300명이었는데 그들이 기드온의 300용사가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렇다. 당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고 어떤 때는 무리 수 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다고 했으니 그 수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 제자로 선발 된 사람은 겨우 열 둘, 기드온의 300 용사 때보다 경쟁이 훨씬 더 치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마태복음 10장엔 주님의 제자 시험 예상 문제가 있다. 바로 내게 합당치 아니한 자의 유형이 그것이다. 주님께 함당치 아니한 자 곧 주님의 제자 시험에 합격 하지 못할 첫 번째 유형은, “관계 정리가 안 된 사람”이다. 관계가 정리 되어야 한다. 우선순위의 관계정리이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하나님과의 약속이 먼저인지 인간끼리의 약속이 먼저인지 그 우선순위에 대한 관계가 정리 되지 않아서,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주님과의 관계를 쉽게 끊어 버리는 사람, 사람과의 관계를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은 주님의제자가 되지 못한다는 말씀 인 것이다.

이 우선 순위를 결정하기가 가장 어려운 관계가 부모와 자식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라고 성경은 말한다.

며느리가 감히 시어머니의 명을 어찌 어길 수 있으며, 자식이 부모님의 명을 어찌 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 관계 보다 더 중요한 관계,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십자가가 정리 안 된 사람”이다. 십자가를 정리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에겐 두 가지의 십자가가 있다. 하나는 주님이 지워 주신 그야말로 진짜 십자가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가 스스로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자기 사명을 말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후자의 십자가, 곧 자기 스스로 십자가라고 생각한 자기 사명 그것이 문제인데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정년 따라야 할 주님을 따르는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바로 주님께 합당치 아니한 두 번째 유형의 사람인 것이다.

이 기로에 선 우리에게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내가 세상에 검을 주러 왔노라!” 라고 말이다. 무엇에 쓰라고? 바로 이 결정 해야 할 문제를 결정 하는 데 쓰라고 말이다.

더 나아가서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으로 떠나시기 직전, 사실상의 최후의 말씀으로 “이제는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라는 강한 명령어로 최후의 말씀을 대신하신다.

이는 전쟁을 준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바로 무수히 결정해야 할 이 많은 일들에 단절의 칼이 필요함을 역설한 말씀이요 이제는 이 칼을 단호히 써야 할 때란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지체하지 말자! 더 이상 미루지도 말자! 이제는 써야 하고, 이제는 끊어야 한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결정되고 참 십자가가 결정되어 그리스도인의 빛이 회복되는 분들이 많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