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은 언제나 정직하다는 말 아시죠. 알알이 영근 포도알 하나하나가 여름을 이겨낸 농부의 땀방울인 셈이죠.”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땅에서 흘리는 땀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값진 보석이라고 말하는 강익순씨(54)는 올해로 12년째 둔덕면지역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있다.
강씨는 둔덕면 청마기념관 주변 3,000여평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둔덕포도가 유명해 지면서 청마생가와 농장을 찾는 관광객들은 “이육사의 고향 안동에서 7월 청포도가 익어간다면 청마의 고향 거제의 7-9월은 캠벨과 거봉이 익어가는 곳”이라 말하고 있다. 이제는 둔덕에서 포도가 재배된다는 사실은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풍경이다.

사실 둔덕에서 포도농사를 시도한 것은 강씨가 처음이 아니다. 강씨 이전에도 거제지역에서 포도농사를 시도한 사람이 몇 있었지만 그 누구도 포도를 상품화 시키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다.
강씨도 마찬가지였다. 묘목을 식재하고 3년의 시간을 보냈지만 앞서 실패한 사람들과 같이 상품이라 말 할 수 있을 만큼의 포도를 생산해 내지 못했다.
더구나 둔덕면은 지리적으로 바다와 가깝기 때문에 태풍 피해와 강한 바람을 막기 위해 과수원 주변에 바람막이를 둘러칠 정도로 포도재배가 쉽지 않은 곳이다. 특히 지난 2002년 태풍 ‘매미’로 인해 애써 재배한 포도농사를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포도농사는 주로 마사토 땅에서 재배가 대중적이다. 마사토에서 생산된 포도는 포도송이가 크고 모양이 좋기 때문에 상품으로 가치를 인정받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씨는 둔덕의 진흙땅을 고집하고 있다. 진흙땅은 재배가 힘들고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진흙땅에 생산된 포도는 당도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강씨는 한번의 실패에도 아랑곳 않고 새 묘목을 심고 타지역 농가를 방문해 벤치마킹을 하는 등 명품포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더구나 강씨를 비롯한 둔덕포도작목회의 열정과 거제시농업기술센터의 든든한 지원으로 둔덕포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명품포도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강씨는 “거제시농업기술센터의 도움없이는 지금의 둔덕포도는 없었다”며 “시설지원은 물론 기술지원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수시로 찾아와 포도재배에 어려움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 준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어느덧 강씨는 포도의 당도를 높이고 병충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비결도 가지게 됐다. 그가 직접 만든 효소퇴비가 그 비결이다. 효소퇴비의 성분을 묻자 강씨는 “우리포도의 비결을 가르쳐 주는 것은 곤란하다”며 웃음으로 질문을 피했다.
강씨는 자신이 재배하는 포도의 당도에 대해 남다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보통 캠벨의 경우 14브릭스(brix) 거봉의 경우에는 17브릭스 정도의 당도를 가진 포도가 상품으로 판매된다.
하지만 강씨가 재배하고 있는 거봉의 경우 20-22 브릭스라는 놀라운 당도를 자랑한다.실제 인터뷰 도중 아무렇게나 골라 측정한 거봉의 당도는 21브릭스 였다. 강씨의 농장에서 생산된 거봉의 가격대는 한 박스에 3만원 정도다.

다른 포도에 비해 고가라고 하자 강씨는 “정직하게 농사짓고 정성을 쏟은 만큼,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책정한 가격”이라며 “농사는 귀한 일이고 품질이 좋은 제품이 그만한 대가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요즘 강씨는 추석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둔덕포도가 점점 명품포도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문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씨는 택배보다는 주로 현지 판매나 단체 주문을 통해 제품을 판매한다. 지난해 택배를 통해 타지역에 상품을 공급했지만 이송 중 관리 부주의로 제품에 변형이 많아 자칫 둔덕포도의 명성에 흠이라도 생길까 염려해서다.
강씨는 “나날이 둔덕포도를 찾고 아끼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포도농사 짓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도 둔덕포도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소비자들을 위해 더욱 맛있는 포도생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