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으로 구성된 노래의 첫 부분이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잡더이다.」로 시작되는데 쌍화는 만두고 회회(回回)아비는 이슬람 사람을 말한다. 그렇다면 고려시대 우리 땅에는 이슬람 상인이 상점을 열만큼 많은 외국인들이 정착하고 살았다는 증거다. 이렇게 귀화한 사람을 역사 기록에는 향화인이라 부른다.
이성계와 결의형제를 맺고 위화도 회군에도 참여하여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에 책록된 이지란(李之蘭)은 본래 여진족이었지만 귀화하여 청해(靑海)를 본관으로 이씨 성을 하사받은 출세한 외국인이다.
동청례(童淸禮)는 외국인 중에 가장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이다. 함경도 회령출신의 여진족으로 조선에 귀화하여 성종 때 무과에 급제했고, 연산군에 이르러 위장(衛將)의 지위에 올랐는데 위장은 임금의 호위군이자 왕실 친위부대인 금병을 지휘하는 종2품 무관직으로서,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장 같은 자리였다.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 김충선(金忠善)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휘하에서 군사 3천여 명을 이끌던 좌선봉장(左先鋒將)이었는데 귀순하여 조선군에 편입된 후 왜군과의 전투에서 누차 큰 공을 세워 종2품인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선조로부터 김해를 본관으로 성명을 하사 받았다.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은 네델란드 출신의 선원이었던 벨테브레로 우리 이름은 박연(朴淵)이다. 일본으로 가던 중 표류하여 제주도에 도착했고 조선 정부는 한양에 데려와 훈련도감에서 총포제작 일에 종사하게 했다.
1986년 귀화한 독일인 이참(李參) 씨가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미국인 로버트 할리 씨(한국명 하일)가 「영도 하씨」의 시조인 것처럼 이참씨는 「독일 이씨」의 시조로 귀화인으로는 최고위 CEO라 할 수 있다. (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