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좀 짚어주세요”
“맥 좀 짚어주세요”
  • 거제신문
  • 승인 200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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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복 자향한의원장

한의원에서 진료를 할 때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맥(脈) 좀 짚어주세요.”다. 더 나아가서 들어오자마자 팔부터 내밀고 다짜고짜 어디가 아픈지 맞혀보라고 하는 환자도 있고, 어떤 젊은 여성은 손을 내밀며 임신을 했는지 알고 싶다고 한다.

이렇듯 언제부터서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맥진(脈診)을 하는 것이 한의(韓醫)의 진찰을 대표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물론 의사가 손가락으로 맥을 짚어서 병의 증상과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신기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예전에 왕실에서는 왕비나 공주 등 여성의 몸에 어의(御醫)들이 손을 댈 수 없어서 실을 이어서 맥을 봤다는 이야기 등의 일화로 인해 신비하게 부풀려지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궁궐내 여성의 진료는 조선 태종때 의녀(醫女)제도를 두어 어의를 대신해 신체 접촉이 필요한 진료를 맡게 하고 그 정보를 어의에게 알려주고 지시에 따라 시술도 하였다.

그럼 한의의 진찰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어떻게 진료를 받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고자 한다. 한의에서의 진찰을 뭉뚱그려 ‘사진(四診)’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네 가지 진찰’인데, ‘망진(望診)’, ‘문진(聞診)’, ‘문진(問診)’, ‘절진(切診)’이 그것이다.

망진은 환자의 거동이나 표정, 안색, 환부(患部)의 색택(色澤), 혀 등을 보면서 진찰을 하는 것이고 문진(聞診)은 환자의 목소리, 가래나 호흡, 심장소리, 여러 내장에서 나는 소리 등을 듣는 것과 환자의 체취, 땀, 대소변, 가래 등의 분비물의 냄새를 맡아서 하는 진료이다(문(聞)에는 ‘듣는다’는 뜻 외에 냄새를 ‘맡는다’는 뜻이 있다).

문진(問診)은 대화를 통해서 하는 진료로 의사가 직접 관찰할 수 없는 과거의 일이나 병의 진행, 일상생활 등에서 일어나는 각종 일들을 물어서 진료하는 것이다.

현재 많은 한의원에서 행해지는 진찰은 사실상 앞의 망진, 문진(聞診)의 일부분도 물어서 하는 문진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고, 이 문진이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절진은 환자의 몸에 손을 대어 하는 모든 진찰을 뜻하는데, 배를 만져 보는 복진(腹診)이나 환부를 만지거나 눌러보고 긁어보는 등의 행위 등과 맥을 짚어보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일반적으로 사진(四診)은 앞에 나열한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편인데 먼저 환자가 진찰실로 들어오면서 바로 망진이 시작되고 환자와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문진(聞診)이 시작되며 의사가 세세하게 따져 물으면서 문진(問診)을 하게 된다.

이렇게 진행을 하면서 중간중간 환부를 만지거나 하면서 절진을 하지만 맥을 짚는 맥진은 통상적으로 마지막에 하면서 앞에서 시행한 여러 진찰들과 증상들이 잘 부합되는지, 진찰 중에 놓치거나 환자가 말하지 않은 것은 없는지 따져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앞에 언급한 내용은 표준적인 방식으로 의사마다 고유의 진찰 방식과 순서가 있고 질환에 따라 진찰 형태가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듯 진찰을 하거나 받을 때는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서 동원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가지고 하는 것이 좋다. 척보고 내 병을 알아맞추라든지, 아니면 어디는 맥만 보고 알아맞히는 용한 의사라는 식으로 의료를 신비화하는 것은 모두 경계해야 한다.

물론 사람에게는 체질 등의 일정한 경향성이 있어서 전형적인 경우 굳이 따져보거나 묻지않아도 알 수 있는 정황들이 있지만 그래도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가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확인해서 의사, 환자 모두 꼼꼼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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