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고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죽음 이후에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면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로 평가하자면,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청년 바보의사>라는 책에서 만나는 안수현이라는 의사를 소개하는 글입니다. 2006년 1월, 그가 예기치 못한 질병을 얻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습니다.
너무 짧은 생애를 살다간 사람이지요. 하지만 그의 생애는 책을 통해 그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는 남이 좌하면 내가 우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책을 구입할 때 40%는 자신을 위해 60%는 남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 예배와 주일성수에 우선순위를 두고,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그 원칙을 지킨 청년이었습니다.
병원생활 중에 늘 주머니에 찬양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한 사람을 만나면 선물하고 위로하는 삶을 살았던 청년입니다. 선배와 교수에게 잘 보이려고 줄서기보다 나는 예수님 앞에 줄섰노라고 고백하는 청년 의사였습니다.
배고픈 환자를 위해 컵라면에 밥 한술 더해 가져다주려고 이미 잠겨있는 병원식당의 아주머니를 귀찮게 하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지나가다 토사에 바퀴가 빠져있는 차를 빼주려다가 진흙을 뒤집어쓰고서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다는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삶은 바보의사라는 별명이 합당해 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주의에 근거한 이 영악한 세상에서 바보라는 별명을 얻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주인 예수님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바보로 사신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소유한 분이시지만 그 이름에 합당한 만큼 높아지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허리를 숙여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고는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겉옷을 달라하는 자에게는 속옷을 주며, 오리를 가자하는 사람에게는 십리를 동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오른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왼 뺨을 대주라고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판단하자면, ‘바보’이셨습니다. 바보예수, 그분은 우리가 바보로 살아가야 할 유일한 이유가 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이 바보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늘 영광을 버리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삶, 소망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닮기를 원한다면 바보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오늘 바로 예수님의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바보처럼 사랑해보세요. 계산하지 않고 거저 주는 사랑을, 손해 보는 사랑을 해보세요.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