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설치는 사회
잠 설치는 사회
  • 거제신문
  • 승인 20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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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광 칼럼위원

태초에 세상은 오직 혼돈(Chaos) 그 자체였다. 어둠의 신 에레보스(Erebus)와 밤의 여신 닉스(Nyx)가 교합하여 낮과 공기의 신을 낳으면서 우주는 질서(Cosmos)와 조화를 이루어간다.

닉스에게는 늙음, 죽음, 잠, 악몽, 비난, 고뇌, 애욕, 불화, 거짓말, 복수를 관장하는 열 명의 자식이 있었다. 사람들이 늙음이나 죽음, 악몽 등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이들이 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안식으로서의 잠이 죽음과 동일시되고, 잠을 많이 자는 자는 게으름의 표상이 되는 등 잠이 주는 느낌 속에 부정적인 성격이 강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두 번째 자식인 타나토스(Thanatos 죽음)와 세 번째 자식인 휘프노스(Hypnus 잠)는 쌍둥이 형제로 죽은 자의 영혼을 데려가는 저승차사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휘프노스는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최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며 신이든 인간이든 동물이나 초목까지 잠들게 만든다. 최면술을 「히프노티즘(hypnotism)」이라 하는 것은 어원이 휘프노스에서 왔고, 휘프노스라는 이름이 로마시대에는 솜누스(Somnus)로 바뀌는데 불면증이라는 영어 「인솜니아(insomnia)」는 솜누스가 어원이다.

잠은 무의식 상태에서 눈을 감고 쉬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잠을 자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가장 활동이 활발한 뇌를 쉬게 하는데 있다. 잠은 렘수면(얕은 잠)과 논렘수면(깊은 잠)이 약 90분을 사이클로 하룻밤에 4-5번 반복되게 된다.

우리 몸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체시계가 존재한다. 생체시계는 빛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밤이 되면 신체활동이 정지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낮이 되면 혈압이 상승하면서 신체활동이 왕성해진다. 그런데 우리 생활 패턴이 밤문화가 현저히 길어지면서 생체시계가 혼란으로 신체적 불협화음을 일어난다.

하루만 제대로 자지 못해도 멍해지면서 암기력, 생각, 아이디어 등 정신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사람에 따라서는 우울해 하거나 화를 잘 내게 된다. 만약 120시간 정도 잠을 자지 못하면 하면 환각, 피해망상, 방향감각 상실, 정신착란 같은 정신병적 징후를 나타내게 된다.

사람이 하루에 얼마쯤 자야 하는지에 대하여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7시간 30분을 권장수면시간으로 보고 있다. 지난 5월 OECD 발표에 따르면, 18개 조사대상 회원국의 평균 수면시간이 8시간22분으로 조사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람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18분으로 수면부족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인의 약 70%는 밤 12시 이후에 잠들고, 그조차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는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다니 심각한 문제다. 이마저 저평가된 수치로 잠자는 동안 다리가 쿡쿡 쑤시는 하지불안증후군이나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자꾸 잠이 드는 기면증, 잠꼬대나 코골이, 수면 중 호흡 정지 등으로 잠을 설치는 사람까지 합치면 수면장애 인구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잠을 많이 자지 않는 것이 근면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이 우리의 풍토였다. 좀 유명해진 사람들이 자랑처럼 하는 말이 「나는 잘 때 안자고 일했다」는 것이거나, 아니면 「아침을 지배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며 아침형 인간을 예찬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잠을 적게 자는 것이 성공의 필수조건으로 정착되고 말았다.

옛 사람들은 건강을 나타내는 3대 증거로 잘 자고(쾌면快眠)·잘 먹고(쾌식快食)·잘 싸는(쾌변快便) 것으로 여겼고, 특히 우리 속담에 「잠이 보약」이라는 가르침은 만고의 진리다. 잠에 빚지고 살면 그 빚만큼 몸이 괴로워진다.

특히 자라는 아이들에게 잠이 부족하면 부상이 잦고 학교 성적이 떨어지며 변덕스러운 성향이 강하며 비만을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는 연구보고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어른들이 잠을 설친다고 아이들까지 잠을 설치게 해서는 안된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동요가 집집마다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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