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작별 긴 여운
아름다운 작별 긴 여운
  • 거제신문
  • 승인 200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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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귀식 칼럼위원
민귀식 새장승포교회 목사
두 달전인 6월10일 낮 12시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강의실. 1학기 수업을 종강(終講)하면서 송 하원(50) 교수가 제자 20 여명과 일일이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야, 이번 방학땐 뭐할거니?”
“넌 취업이 결정됐다며? 정말 축하한다.”
“참, ××는 2학기 때 어학연수 간다며? 가서 공부만 하지말고 여행도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라.”

송 교수는 강의실을 나서며 제자들을 돌아보고 빙긋이 웃었다.

“한 학기동안 정말 즐거웠다. 지금껏 한 수업 중에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어. 안녕.”

송 교수는 이 수업을 마지막으로 정든 교정을 떠나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 반 만인 지난 7월25일 새벽 숨을 거뒀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은지 14개월만이었다.

송 교수는 투병기간 내내 동료 교수들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병을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강의와 연구를 계속했다.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숭숭 빠지는 머리카락을 가발로 감추며 주어진 강의와 연구에 최선을 다했다.

어깨와 등을 비롯하여 허리에 밀려오는 통증을 견디기 위해 6시간마다 진통제를 복용하며 버티었다. 그는 말기 암 환자였지만 만나는 모든 사람을 웃는 낯으로 대하였다.

아버지의 사업부도로 힘들어 하는 제자에게 봉투하나를 내밀며 “힘들어도 꿈을 잃으면 안된다”고 말한 송 교수, 인도 출신 제자 유학생의 모친의 병을 고치라며 수술비를 내민 송 교수, 제자의 결혼식에 참석하여 쌈짓돈을 신부에게 쥐어주며 축하해준 송 교수, 제자들에게 경제적인 문제로 원대한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송 교수, 그는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스승다운 스승이었던 것 같다.

그는 청소년 시절, 가난한 부모님을 만나 서울 신림동의 작은 단칸방에 살면서 연세대에 합격했고, 과외로 학비를 벌며 고학으로 대학을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 UC버클리 석사과정과 텍사스대 토목공학박사 과정 때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연세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15년을 제직하면서 “SCI(과! 학논문인용색인)급 논문만도 40여편을 발표할 정도로 많은 연구업적을 쌓았으며, 강의를 할 때에는 학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한 두 개의 유머를 미리 준비해 학생들을 사로잡으며 강의를 재미있게 이끌었다고 한다.

지난 6월22일 ‘마지막’을 예감한 부인은 송 교수의 동료와 제자들에게 폐암 투병 사실을 알리게 되었고, 병실로 찾아온 제자들을 오히려 송 교수가 위로를 했다고 한다. 

7월27일 연세대 루스채플예배당에서 만 15년간을 봉직한 송 교수의 장례식이 열렸고 1500명의 동료 교수들과 제자들의 환송을 받으며 정든 교정과 제자들을 멀리하고 이 땅을 떠나갔다.

그리고 유족들은 송 교수의 뜻에 따라 장례식후 들어온 부의금 3천만원 전액을 후학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해 달라며 다시금 학교에 기부했다고 한다.

각박한 세상,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이 시대 속에서 송 교수의 아름다운 삶의 모습과 죽음이야말로 정말 학자로서 스승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아름다운 유종의 미를 보여준 오늘의 작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그의 죽음은 우리의 가슴속에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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