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만든 사람, 태평양을 건너다
바다가 만든 사람, 태평양을 건너다
  • 최대윤 기자
  • 승인 2009.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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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멸치 세계의 진상품으로’ 거제식품 권순식 대표

굶주림에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 꿈 많던 유년시절 그의 꿈은 오직 하나였다. 그는 생후 10개월 만에 부친을 여위고 이후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한 어린시절을 추억으로 삼아야 했다.

그는 늘 고향마을 앞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키워나갔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첫 번째 바다를 건넜다. 마산으로 건너가 고교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끼니를 거르면서도 학비마련을 위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요즘도 가끔 힘들었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는 연탄 한번 원 없이 피워보는 것, 라면 한번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 이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가 오랜 타지 생활 끝에 다시 고향 바다를 찾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타향살이에 지친 이유도 있지만 마치 알을 품기 위해 귀소본능을 보이는 물고기처럼 본능에 따라 고향 앞바다에 돌아와 고향 앞바다 선다.

그가 고향 바다에서 키운 꿈은 거제의 대표 특산물인 멸치를 세계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 그는 이후 밤낮 매서운 바닷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멸치잡이에만 전념 했다. 하지만 그가 잡은 멸치는 고생한 보람도 없이 늘 중개상인을 통해 헐값에 처분됐다.

10년 동안 멸치잡이에 긍지를 쏟아오던 바다사나이가 바다를 박차고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 믿었다.

하지만 거제 멸치를 세계최고의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꿈만은 변하지 않고 계속됐다. 그는 지난 1996년 멸치 가공공장 건립을 결심하고 공장설립을 위해 순서를 밟아간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었다. 관계기관에 신청한 공장설립허가는 매번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공장을 짓기 위한 자금도 그리 녹록치 않았다.

공장설립허가로 고심하던 그에게 지난 1997년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온다. 공장설립허가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그에게 정부지원사업에 의한 공장설립 허가가 떨어진 것이다.

그는 지난 1997년 거제최초의 멸치 유통·가공 공장인 ‘거제식품’을 설립하고 거제멸치의 판로개척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했다. 그는 초창기 판로개척을 위해 직접 젓갈통을 매고 전국백화점과 대형유통업체를 찾아 다녔다. 다행히 3~4 곳의 대형백화점 특설매장에 제품을 납품 할 수 있었지만 노력의 대가는 미미했다.

그래서 그는 어렵게 얻은 백화점 특설매장에 납품 기회를 과감히 버리고 재빨리 판로개척의 방향을 바꿔 우체국우편주문판매와 온라인 판매에 주력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거제식품에서 만든 멸치액젓은 ‘수산(한국)전통식품품질인증마크(제20호-멸치액젓)를 획득한다.

거제식품의 제품은 이후 판로가 신장되고 인기몰이를 거듭하며 전국 곳곳에 팔려나간다. 거기다 지난 2001년부터는 마른멸치까지 상품화 하면서 경상남도추천상품으로 지정되는 결과를 얻는다.

그리고 거제식품의 멸치제품은 지난 2001년과 2003년(미국수출계약), 2005년, 2007년 그리고 올해 까지 뉴욕에서 열리는 ‘뉴욕 농수산물 종합박람회’ 경남대표로 참가하고 지난 2004년에는 ‘경상남도 일본시장개척단’에 참가하면서 세계적인 상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거제식품은 지난 10여년의 도약을 통해 국내 멸치판매 유통회사로는 독보적인 존재 인정받으며 지난해 4월에는 체신청으로부터 단일 품목 최고의 판매실적을 인정받아 공로상을 수여했다. 또 지난 2007년에는 거제시장으로부터, 2006년에는 부산체신청 등에 감사패 및 표창장을 수여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거제식품’이 거제지역을 대표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하면서 지역민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회사 설립 5년 만인 지난 2001년 장승포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고 지난 2005년에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5지구 회장을 역임하는 등 꾸준한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또 지난 2005년부터는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한국자유총연맹 거제시지부 지회장으로써 활동하며 ‘나라가 있어야 내가 존재 한다’는 일념으로 사회봉사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국민에게 필수영양소인 칼슘을 제공하는 것만큼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항상 주변에 감사하고 더불어 사는 것이야 말로 유년시절 바다를 바라보며 꿈꿔왔던 삶 이었다”며 “앞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은 어릴 때 꿈꿔왔던 굶주림과 가난에서 벗어나 부를 창출하는 것이 아닌 마음이 따뜻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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