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한낱 솜털투성이의 벌레뿐인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한낱 솜털투성이의 벌레뿐인데
  • 거제신문
  • 승인 200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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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 최우수]박근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읽고

내가 이 노란 표지의 책을 처음 읽게 된 때는 1980년대 초가 아닐까 한다.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 전체가 안개에 쌓여 한 치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신군부(新軍部)가 탱크를 앞세워 대학교 정문을 지키었고 학생들은 학업에 정진할 수 없어서 최루탄이 터지는 거리로 내몰리곤 했다.
그 때 한 마리 노란나비가 자꾸 앞에 와서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샛노란 책의 겉표지를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 여행하며 흥미진진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또 자시 지천명의 나이에 한 쌍의 날개짓으로 나에게 와서 펄럭이며 이리로 오라고, 어서 오라고 눈짓을 한다. 참으로 길지 않은 내용 속에 이렇게 긴 여운을 남기는 글이 또 있을까?

작가 트리나 포올러스는 서두에서 “보다 충만한 삶을 위하여 그리고 그것을 믿으셨던 나의 아버지께”라는 말로 여행을 안내 했다. 알을 까고 나와 찬란한 세상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던진 후 자기가 태어난 나뭇잎을 갉아 먹고 커지고, 커지며 갉아먹고 ...

줄무늬 애벌레는 날마다 먹고 커지는 것이 무료해서 뭔가 ‘그런 삶 이상의 것’을 찾기 시작했고 드디어 꼭대기가 구름으로 쌓여 보이지 않는 애벌레 탑을 발견하게 된다. 서로 짓밟으며 올라가는 그 기중 탑을!

줄무늬 애벌레는 이미 앞선 애벌레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아니 더 지독하게 그 기둥을 오르며 항상 궁금해 한다. 과연 저 꼭대기엔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어마어마한 애벌레들이 생명을 걸어놓고 기어오를까?

애벌레는 자기가 찾는 이상적인 어떤 것이 구름에 쌓여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이미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애벌레들이 “그 곳엔 아무것도 없어!”라고 실망스럽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 믿지 못한다.

정말 괴로운 것은 애벌레 기둥을 올라가면서 서로 사랑하게 된 노랑 애벌레를 버리고 동료 애벌레들을 밟고 위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줄무늬 애벌레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눈을 질끈 감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실행에 옮겨버린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나 남한 땅을 노란 물결로 덮은 사건이 발생했다. 누구나 그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는 자리에 그는 마치 먼저 애벌레 탑 정상에 오른 줄무늬 애벌레처럼 온갖 고생을 하며 다양한 경쟁자들을 다 물리치고 올랐다.

그러나 구름에 쌓인 탑 정상엔 구름 외에 아무것도 없었듯 그 정상의 자리에도 그 대통령을 만족하게 할 것이 없었나 보다.

우린 어떤가? 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인문학이 땅에 떨어져 짓밟히는 우울한 이 시대에 어떤 기둥을 기어 올라가는가? 일류대학을 나와 신(神)의 직장이라 불리는 곳에 몸을 담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삶의 애벌레인 현대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한편 줄무늬 애벌레와 헤어진 노랑 애벌레는 길을 가다 만난 늙은 애벌레의 말을 듣고 기둥을 올라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을 선택한다.

기꺼이 죽을힘을 다해 구름에 쌓인 탑 위로 올라가지 않고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고치가 되고 거기서 번데기를 거쳐서 나비가 되는 이상한 길을!

결국 노란 애벌레는 자기를 감싼 고치를 찢고 나비가 된다. 줄무늬 애벌레가 그렇게 찾고 갈망하던 것이 노랑 애벌레에게 일어난 것이다.

이 현대사회는 다 돈과 명예를 향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국회의원이 얼마나 되고 싶어 하는가? 그러나 국회의원이 되면 싸움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연일 TV에서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노랑나비는 금빛 날개를 치며 따라 오라한다. 여기에 꿈도 꾸지 못한 길이 있다. 수백만의 들꽃들로부터 꿀을 빨고 향기를 흠향하며 자유롭게 곡선을 그리며 날 수 있는 길이 있다.

애쓰며 기어오르는 것이 아닌 슬며시 나뭇가지에 올라 제 속에서 실을 뽑아 고치가 되고 부화하는 길이 있다며 손짓을 한다.

상이군인과 그를 간호하던 간호사 사이에서 태어난 1급 지체장애인인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를 보라! 대통령이 아니라도 위대한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그녀는 인종과 종교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달콤한 꿈을 주고 삶에 향기를 발하게 하지 않는가!

절망하는 자들에게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해주며 위로해 주는 그녀는 다리조차 우리처럼 길지 않았다.
기부의 천사로 알려진 가수 김장훈을 보라. 그는 자신을 위해 콘서트를 열지 않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기꺼이 콘서트를 연다. 콘서트가 끝날 때마다 장애인 시설의 변기가 바뀌고 보일러실이 변한다고 한다.

얼마전 검찰총장 청문회를 본적이 있다. 28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며 그의 아내가 300만원 짜리 핸드백을 들고 6,000만원을 호가하는 제네시스를 타고 다닌다는 검찰총장 후보를 본적이 있다.

시종일관 자신이 없어 자기의 발끝만 바라보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땀만 질질 흘리는 그런 후보를 온 국민은 TV를 통해 보아야만 했다.

현대생활은 시나브로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고 있다. 라면도 이제는 냄비에만 끓여 먹는 시대가 아니다. 그저 끓는 물만 부으면 금방 먹을 수 있는 디지털표 3분 컵라면이 판을 치는 시대이다.

벽에 걸린 시계도 이제는 거의 초점이 없다. 단지 끔벅끔벅하는 깜박이와 붉은 숫자를 볼 뿐. 교육현장에도 “인격의 함양” 대신 무한경쟁이 더 큰 소릴 지르며 달린지 오래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며, 오로지 달려야 하고 위로만 올라가야 살 수 있다고 외치는 지금! 금빛 날개로 날 찾아온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이 압축파일 형태로 다시 또 날 찾아 와 “솜털이 보송보송한 삶의 압축파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보라고 한다. 구름에 가린 허영의 기둥 탑 위로 기어 올라가지 말고.

노랑나비는 다시 구름에 쌓여 있는 애벌레 기둥 쪽으로 날아간다. 여전히 기어 다니며 나뭇잎을 갉아먹고 몸집이 커지는 것 외에 더 가치 있는 삶을 찾고 있는 줄무늬 애벌레에게 “네 속에 나비가 있어. 너는 솜털이 숭숭 나 징그러워 보이는 그대로의 줄무늬 애벌레가 아니라 나처럼 우아하게 날 수 있는 황금빛 날개가 있는 나비가 네 속에도 있어!

너처럼 보이는 것은 죽을거야. 하지만 너의 참 생명의 실제는 여전히 살아있어. 생명이 변화한 것이지 사라진 것은 아니야 (What looks like you will die but what's really you will still live Life is changed, not taken away.) 네가 이전 것에 집착하지 않고 기꺼이 포기하기만 한다면! 수천수만의 꽃송이에서 꿀을 맘껏 달콤하게 누릴 수 있는 나비가 될 수 있어...”라고 외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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