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말라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말라
  • 거제신문
  • 승인 200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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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부 우승]신세영/거제중앙중학교 3학년

[전태일 평전을 읽고]

전태일 평전을 접하게 된 건 순전히 방학숙제 때문이었다. 지정도서 목록 중에 전태일 평전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제일 먼저 한 생각이 ‘아~저택은 읽지 말아야지’였다. 평전이라는 단어가 무겁고 어려운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서관에 가보니 내가 빌리고자 싶었던 책들은 벌써 대출 된 상태였고 그나마 남아 있는 게 바로 이 책이었다.  지정도서 목록에는 있었지만 가장 구석진 곳에 꽂혀 있어서 정말 인기가 없구나 싶었다.

하지만 책을 꺼내 표지를 보았을 때 왠지 이 책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묘한 긴장감과 분신자살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말이다.  비밀이 있을 것 같은, 많은 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책.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한 22세의 젊은 청년이다.  그가 왜 분신자살을 했어야 했는지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 그의 짧은 인생을 이야기 할까 싶다.

그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 어린 나이부터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그는 서울 평화시장의 시다에서 미싱 보조를 거쳐 미싱사가 되었다. 그러나 평화시장의 처참한 노동현실을 보며 조금이나마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재단사가 되었다. 하지만 업주들은 그런 넓은 마을을 가진 그를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통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밝힌 근로기준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재단사 모임을 만들어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의 참된 투쟁을 받아주기에는 더렵혀져 있었다. 사회의 무반응과 돈으로 둘러싸인 권력의 힘에 의해 개혁이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끝내 자신의 목숨을 바쳐 근로기준법이 실현되기를 바란 것이다.

39년 전의 노동환경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열 받기도 했다. 지금 2099년의 노동환경은 천국이나 다름없을 만큼 많이 개선 되어있다.  정말 많이.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시다라는 직업을 가진 아이들의 노동을 보고 너무나 화가 났다. 시다는 미싱사나 재단사의 일을 보조해주고 여러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하는 평균 12~15살의 소녀들 이었다.

그들은 8평정도 되는 작업장에 몸을 돌리기도 힘들만큼 서로 끼어 앉아 하루 종일 햇빛 한번 못보고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하는 것이다. 15시간이라는 시간을 성인도 아닌 그들이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일은 산더미 같이 많고 자기는 죽어라 열심히 하는데 주인이나 미싱사들은 잘 못한다며 욕도 하고 심지어는 때리기 까지 했다. 

이게 말이 되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근로시간은 일일 최대 9시간으로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15시간의 노동을 시키며 더더욱 야간작업까지 시키는 게 아닌가. 거기다 주인은 그 어린나이의 아이들에게 잠 안 오는 약을 사다 먹이면서 까지 노동을 시킨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못 할 수도 있는 건데 왜 폭력을 사용 하냔 말이다. 얼마나 잘한다고 남을 때릴 수 있는 것인가. 다른 사람보다 잘하면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는 거고, 다른 사람보다 못하면 그냥 때리는 데로 맞아야 한다는 게 어디 정해져 있냐 말이다.

거기다가 그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할 때 전혀 측은한 마음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자기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것도 준수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만약 그 아이가 자기 자식이라면 그런 식으로 일을 시킬 수 있었겠는지 참 퍽이나 궁금하다.

또 하나, 화장실 한번 갈 때도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인들은 15시간 동안 소변 한 번 안보기에, 다른 이들의 생리 현상에 저렇게 눈치를 주는 가 싶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노동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임금은 얼마 일까?

이렇게 열심히 하니 그나마 많은 돈을 받아, 먹고 살기에는 괜찮겠지? 무슨 소리. 그들의 한 달 임금은 평균 3000원도 안되었다. 그렇게 일하고 받은 돈이 3000원 이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그들의 현실이었다. 아니, 우리 대한민국의 지난 날 노동의 현실이었다. 

돈 많고 잘사는 집 아이들은 부모님 밑에서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 아이들은 가난에 굶주려 살기 위해 일을 하지만 거기서도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니 이 얼마나 슬픈 일 이란 말인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인간 노동을 보며 전태일은 억울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앞장서서 노동 운동에 뛰어 들었다. 근로 기준법을 보며 평화시장도 실현 될 수 있다는 부푼 꿈을 가졌지만 근로 감독관과 기업주가 결탁하여 서로 돕고 봐주는 사이인 걸 그가 어떻게 알 수 있었냐는 말이다.

돈 많고 빽 있는 권력가들의 부정부패에 전태일 같은 근로자들만 죽어나가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더러운 비리다. 지금도 뒤로 돈 주고 꽁 무늬 빼는 일들이 허다하지 않는가.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이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그렇게 돈 많은 인간들은 돈 많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거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희생양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전태일의 분신자살이 아닌가 싶다.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칠 때 그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목숨을 내 놓고 자기의 의사를 표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게 그 얼마나 힘든 일인걸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불이 자기 몸을 타고 오를 때 그 고통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 아니, 모른다. 우리는 그의 고통을 아주 조금이라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난 절대, 내 목숨을 바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열악한 환경과 힘든 노동일에 화가 나고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내가 앞장서서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에 그런 상황 속에서 수많은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건 아닐 까 싶다. 전태일에 대해 난 몰랐다. 그가 누군지도, 어떠한 사람인지도, 어떤 일을 했는지도. 하지만 이 책을 일고 난 후 난 그를 알게 되었다.

착한 마음을 가진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돈을 털어 약을 사주고 먹을 것을 사주며, 사람다운 대우를 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실이며, 더더욱 청소년들은 그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를 알았고, 그를 안 이상 그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의 말대로 그의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일을 겪게 된다면, 내 의사를 확실히 밝히며 정당하지 않은 일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난날,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모든 근로자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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