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디 악귀는 음습한 곳을 좋아한다. 치마에 구멍이 난 채로 입으면 그 구멍을 통해 여자의 음습한 사타구니로 악귀가 들어간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치마에 구멍이 나면 그 구멍을 메우되 반드시 붉은 헝겊으로 꿰매게 된다.
요즘은 지구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는 천연두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병 가운데 하나였다. 두창(痘瘡) 마마 손님 등으로 불리는 천연두가 창궐하면 마을 입구에 긴 간짓대를 세우고 거기에 붉은 두루마기를 걸어 놓았다.
가축이 생산하면 축사 주변에 황토를 놓고, 마을 제를 지낼 때도 길 양쪽에 황토를 깐다. 동짓날 팥죽을 끌이고, 이사하면 팥죽이나 팥밥을 먼저 해 먹는다. 아들을 낳으면 금줄에 고추를 걸어 놓는 것은 남자애의 성기를 표시한 것이 아니라 고추의 붉은색 때문이다. 장을 담그고 장독에 고추를 매는 것도 귀신의 범접을 막으려는 비책이다.
생활사의 모든 재앙은 귀신의 소행으로 여겼고, 귀신은 붉은 색을 싫어한다는 적색기속(赤色奇俗)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따라서 귀신을 쫒는다는 양귀법(禳鬼法)에 붉은 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특히 불은 붉은 탓에 매우 강렬한 벽사(?邪) 능력을 가졌다고 보았다. 붉은 적(赤)자는 큰대(大)자와 불화(火)자를 묶어 놓은 회의자(會意字)다. 오죽하면 기생이 자기 기둥서방 몰래 다른 남자와 사통하다 들키면 여자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불에 달군 기왓장으로 음부를 지져 바람을 일으키는 음귀(陰鬼)를 쫒을 수 있다고 믿었다.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여성용 빨간 내복이 전체 여성용 내복 상품 중 60%를 차지할 만큼 잘 팔린다고 한다. 이 또한 적색기속이 가져온 우리 문화의 일면이라 할 수 있다.(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