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세에 결혼한 남자
112세에 결혼한 남자
  • 거제신문
  • 승인 200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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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英祖)임금은 83세까지 장수하면서 역대 임금 가운데 가장 긴 52년 동안 재위했다. 왕비 정성왕후(貞盛王后) 서씨(徐氏)가 죽고 나서 이제 겨우 15세였던 김한구(金漢耉)의 딸을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로 삼으니 왕의 나이 66세였다. 조선 개국 이후 가장 나이 차가 많아 나는 혼인으로 왕과 비의 나이 차가 무려 51년이었고 며느리인 혜경궁 홍씨보다 열 살 아래, 장차 정조가 되는 손자보다 일곱 살 많을 뿐이었다.

대신들이 반대했지만 정력이 왕성했던 왕이 고집을 부려 이룬 혼사였다. 당시 여론을 보면 「66세의 늙은이가 15세 소녀를 후비로 하여 중전을 삼으려니, 이런 해괴한 일이 있는가. 손녀, 증손녀 같은 어린 계집애를 향락하려는 70 노인은 노망이겠지만, 국구(國舅)의 세도를 하려고 어린 딸을 늙은 산송장에게 팔아먹은 김한구(金漢耉)가 더 미친놈이다.」

일흔을 넘긴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영화 「죽어도 좋아」가 노년기의 성생활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73세의 할아버지와 71세의 할머니가 벌리는 대담하고 파격적인 정사장면을 통해 노인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평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정사 중의 대화가 압권이다. 「아들 하나만 낳아줘」「그래, 낳을 수 있으면 낳아야지」 섹스의 절정에서 던지는 할머니의 말 「이젠, 죽어도 좋아」

늙은이가 성(性)을 들먹이면 주착스럽고 망측하다는 통념에서 「노인도 섹스를 하는구나」하는 노년기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데 긍정적이었다.

소말리아에서 112세의 할아버지가 17세 소녀를 여섯 번째 아내로 맞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이미 다섯 명의 부인과 13명을 자식을 두고 있으면서도  고손녀뻘인 신부를 맞으면서 그녀가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려왔을 뿐 아니라 아이를 낳아 주기를 바란다는 희망까지 내 비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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