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진도(珍島)에서 보물찾기
보물섬 진도(珍島)에서 보물찾기
  • 거제신문
  • 승인 201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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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순 칼럼위원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진도 여행길에 올랐다. 왠지 몰라도 진도에 가고 싶었다. 같은 섬이라서 인지, 섬 이름이 좋아서인지, 섬의 크기가 우리 거제보다 다음이라서 그런지 아무튼 유난히 가보고 싶었던 진도였다.

잔뜩 벼르던 여행길이었다. 순천에서 점심을 맛있게 먹고 한참을 달려가니 진도대교가 나왔다. 현수교였다. 멋진 진도대교가 인상적이었다.

통과중량 위주의 우리 거제대교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입구부터 명량대첩 승전기념탑과 이순신 장군 동상이 사람들을 맞았다. 울돌목이 물 흐르는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하여 명랑대첩이라고 한단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지금도 울돌목을 살피는 것 같았다.

뭐가 좋아서, 뭐가 보물이라서 섬 이름을 진도(珍島)라 했을꼬. 의문을 갖고 찾아보기로 했다. 소치선생 기념관이 있는 운림산방을 찾아갔다. 때마침 토요일이라 잘 왔다고 했다. 문화법인(재단)을 만들어 공연도 하고 경매도 하는 요일이었다.

그곳에 보물이 있었다. 일본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진도아리랑’ 공연을 봤다. 익살스럽게 개사하여 부르는 진도아리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열두시에 오라고 금시계를 사줬더니 / 일이삼사 몰라서 한시에 왔네
 저기가는 저 처녀 엎어져라 / 일어나게 하면서 안아나 보자
 저기가는 저 처녀 앞가슴을 보아라 / 넝쿨 없는 호박이 두통이나 되는구나” 

해학적이면서 정감이 가는 가락이 흥겨웠다. 진도는 가난한 섬이었다, 농사가 전업인 것처럼 보였다. 지천에 대파와 배추뿐이었다.

또 하나의 보물은 진돗개의 혈통 보존사업이었다. 충성심과 귀가본능이 강하고 용맹성과 대담성, 수렵본능 등으로 유명한 진돗개를 지키기 위해 ‘진도개 사업소’라는 행정기구를 두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신비의 바닷길’일 것이다. 물때가 맞지 않아 일행은 보지 못했지만 미루어 짐작되는 보물일 것 같았다. 바다 2.8㎞구간이 400여m의 폭으로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장관이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하늘이 진도에 준 보물이리라 느끼면서 여행의 속도를 냈다. 가는 곳곳마다 대파와 배추밭이 또 보인다. 비록 가난하지만 마음씨가 넉넉해보였고 조급하지도 않았다. 순박하고 인심이 좋았다.

음식점 종업원들이 자기고장의 역사를 알리고 자랑하기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 느꼈다. 손님대접을 잘 해서 보내야 또 온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여행지인 전남 화순군 운주사를 가기위해 진도대교를 다시 건너면서 역시 문화예술이 보물섬 진도의 진국이라 느끼면서 우리 거제도 소리(창)와 글(모필)은 물론, 그림과 춤이 있는 문화예술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배문화의 씨앗이 묻혀 있는 거제와 진도. 문화는 같지만 다른 것이 있었다. ‘굶어죽어도 씨앗자루는 베고 죽는다’는 심각한 각오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진도정신이 그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들 하지 않는가.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는 운림산방의 서각작품 글귀가 충고로 느껴짐은 나만의 욕심이 아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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