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주인이 먼 나라로 길을 떠나기 전에 세 사람의 종들을 불러 각각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게 된다.
주인이 없는 동안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으로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그렇게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그 돈을 땅을 파고 감추어 둔다. 혹시 잘못하여 본전조차 잃을 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에게 맡겼던 자기 소유를 회계하게 한다.
주인은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았던 사람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하며 주인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게 한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아 땅 속에 묻어두었다가 가져온 사람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나무라며 그조차 빼앗아 버린다.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비유다
한 달란트를 받아 그나마 손해를 보지 않고 본전이라도 가지고 온게 다행일지 모른다. 세상에는 본전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3대 거짓말이 있는데 첫째는 처녀 시집 안간다는 이야기요, 둘째는 장사 본전에 판다는 이야기요, 셋째는 늙은이 죽고 싶다는 이야기다. 다른 말은 다 믿어도 이건 믿을 게 못된다는 이야기다.
두고 쓰는 말 가운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도 있다. 사실 이만큼 좋은 꽃놀이 패는 없다. 본전만 보장된다면 밑지고 팔아도 아쉬울 게 하나도 없고, 남이 볼 때는 밑지는 장사 같지만 기실은 본전은 다 챙기게 되니 손해 볼 것도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일만 벌리면 본전 까먹기 일쑤고, 말만 했다하면 본전도 못 찾는 경우가 있다.
우리 대통령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떨 때는 대통령이 참 딱해 보인다. 원래 그 분 말씀 잘하기로 치면 달변이요, 토론에서는 달인으로 통한다.
정권 초기에는 대국민 대화라는 직접요법으로 국민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신 분이다. 그가 창이 되면 방패가 소용없고 그가 방패가 되면 그를 뚫을 창이 없을 정도로 말솜씨가 빼어나시다.
말에 있어서는 DJ 어르신 보다 한 수 위임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도 말만 했다하면 본전도 못 찾는 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오죽하면 그 분 어록이 작성될 정도겠는가.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많을까 하노라」라는 옛 시조가 오늘따라 새삼 그 깊이에 놀랄 뿐이다.
탁월한 언변술을 지녔다는 것은 탁월한 식견을 겸비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우리 사회에서는 말 잘하는 것을 높이 치지 않았다.
이른바 선비의 품성은 달리어 흐르는 물과 같이 거침없이 말 잘하는 현하구변(懸河口辯)보다는 한마디 말이지만 무게가 실려 있는 일언천금(一言千金)을 더 높이 샀다.
말만 본전을 못 찾는 게 아니고 하는 일들도 하나같이 본전 잃기 일쑤다. 도대체 무엇 하나 본전 찾는 일이 없다. 그동안 국회의원 재보선이나 지방선거도 했다하면 본전도 못 찾고 망신을 당한다.
0 대 40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어떻게 변명해야 하는지 입이 열 개라도 모자랄 거다.
공교육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교육혁신을 부르짖으며 거의 혁명에 가까운 제도개선을 시도하고, 좋은 부모 만나 고액과외를 받아 유수한 대학에 들어가는 일부 잘 나가는 아이들을 적대시하며, 그들 부럽지 않도록 사교육비를 줄여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 오히려 학교교육을 악화시키는 결과만 가져온다.
사회 불평등 해소라는 거대한 복지정책이 거꾸로 저소득층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되면서 그나마 빠듯한 살림을 쪼개어 세금만 늘게 되고, 보은 코드 인사라는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여론의 눈총을 지청구 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고집도 본전 못 찾는 빌미가 된다.
오죽하면 장관 시켜서는 안될 사람이면 언론에서 시켜야 된다고 우기고, 시켜야할 사람이라면 시켜서 안 된다고 딴지를 걸면 틀림없이 역발상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우스개도 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청와대에 들어오는 신문을 절독해 버리는 그 이유 같지 않는 이유도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것만 못했다. 본전 못 찾은 가장 큰 정책의 하나가 바로 부동산 정책이다.
강남 아줌마의 기를 꺾어 놓겠다고 시작된 싸움(?)이 드디어 서울 전역을 투기장으로 만들어 놓고 이름하여 ‘서울 특별시’가 아니라 ‘서울 투기시’라는 비아냥거림 속에 전국의 땅값은 미친년 치맛자락처럼 펄럭이도록 만들어 버렸다.
의도와는 다르게 자꾸 반대로 굴러가는 세상이 참 딱하다. 세상의 이치는 물 흐름에 있다.
물길을 다르게 할 수는 있지만 흐르는 물을 막을 수도 없거니와 낮은데서 높은 데로 오르게 할 수도 없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세상의 기본이 됨은 그런 까닭이다. 한 달란트 받은 자가 본전을 잃지 않고 가져와도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낙인 되는데 본전조차 잃고 온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어떤 꾸지람을 들어야 할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