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사람이 죽어 그 영혼이 하늘에 오르자, 문득 그 앞에 추하고 더러워 소름끼치는 여자가 나타났습니다. "너는 왜 이런 곳에서 헤매고 있느냐? 그처럼 흉측하고 더러운 끔직한 몰골로 방황하는 너는 누구냐?"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 무서운 여자가 대답하더랍니다. "나는 너의 행위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지난 과거의 삶을 돌아보면 추악하고 소름끼치며 더러운 행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이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과정을 통과해서 하나님 앞에 설 때 살아온 행위가 드러난다면 우리 역시 더럽고 추악한 모습일 것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절대적인 기준 앞에선 인간은 죄 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죄 된 존재인 인간은 선을 행할 때 행복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가장 많이 누린 사람 중 하나인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도다.> (전도서 3장 12절) 그는 많은 재물을 소유했습니다. 그는 지혜로 주변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습니다.
그는 많은 후궁을 두고 육체의 쾌락도 누린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 알았다>
예수님께서는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우선되는 가치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통한 가르침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도 맞아 거의 죽게 된 채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그 죽어가는 사람의 옆으로 제사장이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는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길 반대편으로 멀리 돌아 도망치듯 비켜갑니다.
다음에 레위인도 그 사람을 발견합니다만 그 역시 가던 길을 그냥 가버립니다. 고통당하는 자를 외면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한 이방인이 지나갑니다. 그는 고통당하는 자에게 가까이 갑니다. 그의 상처(트라우마)를 싸매줍니다. 그를 자신의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 돌봐줍니다.
그리고는 사업차 길을 떠나면서 여관의 주인에게 이 사람을 돌보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비용이 더 들면 자신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끝까지 책임져준 것입니다. 사랑으로 선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선을 행하여 고통당하는 자들의 이웃이 되어주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길입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이 땅에 전쟁과 기근, 자연 재해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탄식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가 이웃 되어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선을 행할 때 우리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적극적인 기쁨은 선을 행할 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