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8년 5월 18일 비개인 오전. 전날 내린 비로 촉촉이 젖은 계룡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헬기 한대가 내려앉는다.
거제군청 직원들은 뜻밖의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수행원으로 보이는 2명의 외국인이 헬기에서 내리고 뒤이어 이국적인 옷차림에 마른 체격의 외국인 1명이 헬기에서 내린다.
상부의 지시를 받은 조정줄계장(당시 35세)은 급히 공보용 지프차량을 이용해 이들을 수행하게된다. 헬기에서 내린 뜻밖의 손님은 다름 아닌 이틀 전 한국방문 일정에오른 에티오피아왕국의 셀라시에 황제(당시 76세).
젊어서부터 어진군주로 명망이 높았으며 지난 1930년 즉위식 날 초상이 미국 타임지 표지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그는 지난 1950년대 비동맹외교와 아프리카통일기구(OAU) 창설 등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특히 평화주의자로 잘 알려진 그는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친위대 1,500여명을 파견해 한국을 도우면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는다. 한국정부는 그런 그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국정부는 황제의 방한을 제안했고 지난 1968년 5월 18일 황제가 방한하게 된다.

황제의 관광은 비공식적인 일정이었고 보안 등의 이유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2박 3일 동안 떠들썩했던 언론에 황제의 관광은 기록되지 않았고 외교부에도 황제가 헬기를 이용해 전주를 향했다는 기록만 남아있는 상태다.
서울에서 출발한지 1시간 남짓 만에 전주에 도착한 황제는 잠시 전주를 둘러보고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포로수용소가 있고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해금강이 있다는 거제도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날 황제가 거제관광을 위해 선택한 코스는 거제군청(현 고현동사무소)을 출발해 문동과 구천계곡을 지나 망치삼거리와 학동몽돌해수욕장을 거쳐 해금강으로 가는 코스였다.
거제군청 공보용 차량에 몸을 싣고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던 황제는 무슨 일이었는지 황급히 차를 세운다. 아직 목적지인 해금강에 다다르기에는 한창이나 남은 거리였다.
황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다를 바라보며 외쳤다. "원더풀"
이어 황제는 "내 평생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를 본적이 없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황제는 거제관광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 귀국길에 올랐다. 하지만 황제가 거제를 다녀간 일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비공식 일정에 극비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수행했던 조정줄씨는 지인들 또는 공식석상을 통해 황제를 수행한 경험담을 여러 번 발설했고 황제가 거제를 다녀가면서 '원더풀'을 외쳤던 장소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황제의 길'이라고 불리게 됐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황제의 길은 도마 위에 오르게 된다. 실제 황제가 다녀갔는지에 대한 진실논란 이었다.
더구나 최근 문화일보에서는 "거제도에 있는 황제의 길 유래는 1972년 에티오피아의 데트라 디쇼메 재무부 재정차관보가 다녀간 사실을 각색한 거제시의 뻥이며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가 거제도를 방문 한 기록이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는 기사를 게재하기에 이른다.
이에 본지는 황제의 길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에 대한 증거자료와 증인을 수소문 한 뒤 '황제의 길은 뻥이 아니라 진실이었다(본지 889호 1면)'라는 기사를 게재해 황제의 길에 대한 사실을 밝혀낸다.
그리고 '황제의 길'이 허구가 아닌 진실이라는 것이 밝혀진 만큼 앞으로 황제의 길에 대한 정확한 고증과 대대적 홍보를 통해 미래관광자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황제의 길이 '뻥'이라 이야기 했던 문화일보도 당사자인 거제시도 어떠한 입장도 말하지 않고 있다.
사실 황제의 길은 그동안 시민들에게 '황제의 길'보다는 학동 가는 길, 벚꽃 좋은 언덕길, 드라이브하기 좋은 길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황제가 다녀간사실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은 드물다. 그저 구전으로만, 전설로만 여겨 왔던 탓이다.
이제 황제의 길은 역사적 진실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1,000만 관광거제의 효자노릇을 톡톡히 할 수 있도록 시와 우리 시민들이 지혜를 모아가야할 것이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