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메사추세스 병원에서 임종직전의 말기결핵 완자를 3시간 40분동안 체중의 변화를 관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숨을 거두는 순간 그 환자의 몸무게가 1.25 온스(35.4gm)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2년 반 뒤에도 임종 직전의 다섯 환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조사해보았더니 역시 영혼의 무게는 1온스(28.4gm)였다는 결과를 얻었답니다.
최근에는 스웨덴의 룬데 박사팀이 정밀 컴퓨터 제어장치로 그 실험의 진위검사를 해보았더니 임종시 환자의 체중변화는 21.26214그램이었답니다. 그것이 과학자들이 측정한 영혼의 무게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연구결과를 근거로 멕시코 출신의 영화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alez Inarritu)는 영화 <21그램>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과학적인 접근이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치를 설명가능한 것으로 측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영혼이라는 것은 1온스 정도의 무게를 가진 것으로 평가되겠지요.
하지만 세상에는 과학적인 데이터와 합리성으로는 측량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영혼의 가치도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영혼의 가치는 단지 몇 그램인지를 측량하려는 접근방법으로 알 수 없는 무게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인간의 가치는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을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을 하늘 향기와 거룩함과 따뜻함과 환한 빛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아름답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밀을 알았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과 신령함으로 영혼을 채우려고 영적인 몸부림을 쳤던 것을 봅니다. 영혼의 사모함이 그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시련 143:6)
마른 땅이 하늘로부터 내리는 비를 갈망하듯 그 영혼이 하늘의 것으로 채워지고 흡족해지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늘로부터 오는 온갖 아름답고 신령한 것으로 우리 영혼을 채울 때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향기가 나는 삶이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질서는 더욱 풍요로워지는데 영혼의 울림과 맑음을 가져다주는 가르침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습니다. 교육과 과학은 진보했는데 세상은 더욱 부조리하고 험해진다는 탄식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하늘 아버지의 것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잘됨을 구하지만 그 영혼에 여전히 악취 나는 탐욕과 경쟁으로 채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세대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쌀가마니의 무게를 재듯 영혼의 무게를 재려하는 세상 속에서 영혼의 넉넉함과 풍성함을 간직하고 살면서 그것을 세상에 나타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영혼의 가치와 무게는 1온스가 아니라 천하보다 귀한 것임을 세상에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