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한 전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허참(許參)'이라는 법으로 보장된 신입 관리의 신고식이 있었다.
허참은 글자 그대로 참석을 허가한다는 뜻으로 신입관리가 일하게 될 부서를 배정받으면 해당기관의 선배와 이루어지는 상견례지만 그게 그렇게 만만하게 볼게 아니다. 한두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심하면 한 달 넘게도 시달릴 경우도 있었다.
드디어 흡족하다 싶으면 동좌(同座)를 허(許)한다는 문서에 선배들이 수결(手決)한 면신첩(免新帖)을 내려야만 그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처음에는 안면을 트기 위한 좋은 의도였겠지만 점차 신참 길들이기로 변질되어 신체적 괴롭힘 뿐 아니라, 과도한 경제적 손실까지 감당해야 했기에 과거에 급제하고도 임관(任官)을 포기해야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실록 중종38년 기록에 의하면 신래(新來)에 대한 침학(侵虐)으로 온 몸에 진흙을 바르거나 낯에 똥칠을 하고, 더러는 겨울에 물속에 집어넣기도 했다. 거기에 뜻에 잘 따르지 않으면 매질도 서슴지 않았다.
잘 차린 음식대접에 선물까지 요구하기 일쑤였고, 신래는 수치스럽고 오욕스러운 일이지만 허참례가 부실하면 눈 밖에 나 두고두고 핍박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괴로워도 이를 감내해야 했다.
오죽 심했으면 여러 임금이 나서 허참을 혁파하려고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명종임금 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율곡선생만이 끝까지 허참을 거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대학가에서는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명목으로 후배 길들이기 신고식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조폭을 방불케 하는 폭력, 성희롱 수준의 엽기적인 행위, 토할 때까지 강제적으로 술을 마시게 하는 사발식 등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군기잡기 문화의 연원은 허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