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왕국' 오명(汚名) 씻어야 한다
'자살왕국' 오명(汚名) 씻어야 한다
  • 거제신문
  • 승인 2010.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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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본지 칼럼위원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서 '자살왕국'이라는 달갑지 않은 명예(?)를 차지하고 있다. 2008년 한해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2,858명으로 하루 35.1명꼴이라고 한다. 이는 1998년의 8천622명에 비하면 무려 49%나 늘어난 수치로서, 그 사이에 OECD 국가 중 4위에서 1위로 등극했다고 한다.

IMF 금융위기 이후에 실시된 어느 보고서의 분석에 의하면, 다른 조건이 같을 때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거나 성장이 정체돼 있거나 할 때 또한 저성장 국가가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우리의 경우는 성장률이 높다가 점차 낮아져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드는 경우로서 자살률이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인구구조가 고령화돼 은퇴 이후의 인구 구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과,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져서 남성의 전통적인 권위의 상실, 경제의 경쟁 증대로 인한 새로운 스트레스 창출로 인해 자살률이 높아진다고 진단하면서 "최근 우리나라의 자살률 급증은 경제·사회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성장통(成長痛)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진단한 바 있다.

통계숫자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체감으로도 우리 주변에 자살이 너무 성행하고 있는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숱한 정치인들, 고위 공직자들, 굵직굵직한 기업인들, 힘들고 고독한 고령자들, 이름깨나 있는 연예인들, 취업난에 직면한 사람들과 실업자들, 가정불화가 잦은 사람들, 학교 진학문제로 고민하는 젊은이들 자살하는 부류도 가지각색이고 너무나 빈번하게 들려오는 사건들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살의 이유나 그 배경은 가지가지겠지만 자살의 과정은 대개 심한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 그리고 자살이라는 종착역에 이르는 것이 공식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몇몇이 모여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서 토론을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전문가의 토론도 아니고 어떤 상황에 구애받은 것도 아니고 그저 자유분방하게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것이다. 먼저 그 이유로서 심한 빈부격차, 구직난과 높은 실업률, 대학 입학문제 등의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그 중 필자의 관심을 끈 의견이 몇 가지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것은 한국인의 '빨리빨리', '높은 음주율', '인터넷 과용'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불투명성으로 인한 '부조리'가 아직도 곳곳에 뿌리 뽑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자살은 긴장(스트레스·이하 스트레스로 함)과 이완(弛緩)이 밸런스를 잃었을 때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하는데 빨리빨리와 높은 음주율은 이완의 기회가 상실되고 스트레스가 상승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과용은 인관관계의 단절로 고독과 괴로움이 배가(倍加)되어 이완이 어려울 것이다.

자살이 스트레스와 이완의 불균형 현상일진대, 자살 방지의 원리는 극히 간단한 것이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긴장을 풀어주면 될 것이 아닌가. 이번에 법정(法頂) 스님의 저술인 '무소유(無所有)'가 한국 사회의 주목을 받았던 이유도 이완과 무관치 않다면서 한국사회가 소유에 대한 스트레스에 지쳐있는 바, 그것은 바로 한국의 자살률 1위가 말해준다면서, 이 험한 세상에서 자살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무소유라는 '이완처방'이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옳은 말이다. 그래서 선(禪)이니 명상(冥想)이니 하는 기법들이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은 어디까지나 개인들이 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할 뿐이다.

적어도 '자살왕국'의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 우리로서는 단순히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핀란드처럼 높은 자살률로 국가적 위기의식까지 느껴 1986년 세계 최초로 국가가 주도하는 거국적 '자살예방프로젝트'를 단행해서 자살률을 낮춘 예를 참고하는 등 정부가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 철저히 자살예방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높은 자살률'은 '낮은 출산율' 못지않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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