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현의 속현인 아주현·송변현·명진현 및 역(驛)·원(院) 등이 1271년(원종 12) 가조현(加祚縣)과 영선현으로 이주했다. 이 내용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러 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왜구에 의해 거제현과 그 속현이 이주하게 되었을까.
여기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거제현의 강제이주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먼저 정사류와 지리지에 나온 내용을 살펴보자.
원종 12년에 왜구로 인하여 땅을 잃었음으로 거창군의 가조현에 임시로 의지하여 살았으며, 충렬왕 관성(관성)에 병합하였다가 곧 다시 원래대로 복구하였다(『고려사』권57, 지리지, 경상도, 거제현).
거제현 : 고려 현종 무오년에 현령관을 두었는데, 원종 12년 신민(원나라 지원 8년이다)에 왜적으로 인하여 땅을 잃고 거창 가조현에 교거하였다(『세종실록』권150, 경상도, 진주목, 거제현).
명진현은 원존 신미년에 왜적을 피해 육지로 나와서 진주 임내인 영선현에 살았다. 본조(조선) 공정왕(定宗) 원년 기묘에 두 현(강성현과 명진현)을 합하여 진성(珍城)이라 이름하였다(『세종실록』권150, 경상도, 진주목, 진성현).
아주촌(鵝洲村) : 거제현이 가조현에 임시로 의지하여 살았을 때 본도(거제) 안의 속현 및 역·원 등을 가조현 경내에 아울러 임시로 설치하였다.
아주현은 군(거창군)의 동쪽 10리 지점에 있고, 송변현은 무촌역(茂村驛)의 남쪽 5리 지점에 있으며, 오양역도 가조현의 서쪽에 있었다. (그리하여) 사는 백성들이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신증동국여지승람』권31, 경상도, 거창군, 고적).
명진폐현(溟珍廢縣) : 원종 때에는 왜를 피해, 육지에 나와서 진주의 영선현(永善縣)에 살았다. 본 조(조선) 恭靖王 때에 강성현(江城縣)과 합병하여 진성현(珍城縣)이라 하였고, 세종 때에는 본 섬(거제도)에 다시 내속시켰다(『신증동국여지승람』권32, 경상도, 거제현, 고적).
이들 문헌은 거제현의 이주 배경에 대해, '왜구'에 의해 가조현과 강성현으로 이주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주한 사람들은 거제현의 관리, 각종 기관, 사람들까지 전부였다.
이러한 기록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중앙정부의 조치는 거제지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고 왜구의 침략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효과적인 일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