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3년(고종 10) 5월 왜가 금주(김해)에 들어왔다 함이 왜구의 첫 기록이다. 그 이후 1290년(충렬왕 16)까지 왜구의 침략 횟수는 총 9회 뿐이다. 특히 거제현이 가조현으로 이주한 시기인 1271년에는 왜구 침략도 없었다. 거제현에 왜구의 침략 첫 사례는 1226년에 발생하게 된다.
봄 정월(正月), 왜(倭)가 경상도(慶尙道) 연해 주군(沿海州郡)에 침구(侵寇)하므로 거제 현령(巨濟縣令) 진용갑(陳龍甲)이 수군들을 사도(沙島)에서 싸워 2급(級)을 참살(斬殺)하니, 적(賊)이 밤에 도망하였다(고려사 세가 편, 고종 13년(1226) 1월).
2월, 왜구가 고성(固成) 죽림(竹林) 거제(巨濟) 합포(合浦)에 들어오자 천호(千戶) 최선(崔禪) 도령(都領) 양관(梁琯) 등이 싸워 이를 쳐부수고 삼백여명을 죽였다. 왜구(倭寇)의 침입(侵入)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려사』권37, 충정왕 2년 2월).
위의 기사에도 알 수 있듯, 1271년 보다 약 80년 이후 발생한 큰 사건이었다. 거제현이 왜구의 침략에 의해 가조현으로 피난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왜구의 침략은 1392년(공양왕 4)까지 169년 간 총 529회이며, 그 가운데 공민왕·우왕 때에는 총 493회로 침략 빈도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 거제현과 그 속현의 사람들이 이주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한 문헌을 통해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종 때에 거제현이 삼별초의 난을 피해서 관아도 여기(가조현)에 임시로 살았고 그대로 거제라 일컬었다. 우리 세종 때에 와서 거제는 본래 섬으로 돌아가고 (가조)현도 거창군으로 도로 예속되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권31, 경상도, 거창군, 속현, 가조현).
3월, …하물며 이제 역적(逆賊, 삼별초-필자주)이 날로 더욱 만연(蔓衍)하여 경상도(慶尙道) 금주(金州 김해(金海))와 밀성(密城·밀양)에 침입하였사오며 거기에 또 남해(南海)·창선(彰善)·거제(巨濟)·합포(合浦·마산)·진도(珍島) 등지를 탈취하고 빈해부락(濱海部落)에 이르기까지 모두 겁탈(劫奪)되었나이다(고려사 세가 편, 원종 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