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여산에 한 여승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봄날 모처럼 밖에 나와 산책을 즐기다가 바위 위에 앉았는데 따스한 봄볕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만다. 여승은 꿈속에서 꽃밭을 발견한다. 여기가 바로 여승이 꿈꾸던 극락세계인양 여겨졌다.
그런데 어디선가 감미로운 향기가 여승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여승은 꽃밭의 깊은 곳으로 향기를 따라 이끌러 갔다. 마침내 여승은 짙은 향기를 풍기는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에 핀 하얀 꽃에서 나는 신비로운 향기가 너무 좋았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었는데 여전히 그 향기가 감돌았다. 여승은 이상하게 여겨 향기가 나는 곳으로 가 보았더니 꿈속에서 본 바로 그 나무가 있었다. 여승은 꽃가지를 꺾어 마을로 내려와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그 꽃을 알지 못했다.
잠자다 향기를 맡았다 하여 수향(睡香)이라 불렀고 꽃말도 '꿈속의 사랑'이다. 나중에 서향(瑞香)으로 이름이 바뀐다. 혹은 이 꽃이 피면 다른 모든 꽃의 향기가 무색해진다고 해서 화적(花賊)이라는 별칭도 있다.
영정조시대 화훼전문가였던 유박(柳璞 1730∼87)은 서향을 품평하기를 「한가로울 때의 특별한 벗으로 십리에 맑은 향기가 풍기는 꽃」이라고 했다. 서양 꽃말과는 다른 동양적 기품이 물씬 묻어나는 표현이다.
가장 친숙한 명칭이 천리향(千里香)인데 천리향, 만리향이라 함은 향기를 강조하려는 상업적 의도가 엿보인다. 서향은 봄에 꽃이 피고, 만리향이라 부르는 금목서는 가을에 황금색으로 꽃이 핀다. 이 늦은 봄에 찬란한 향기를 선사하는 서향에 취해 보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