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갓난아기의 뼈와 근육은 부드럽지만 작은 주먹은 오히려 강하게 쥐고 있다. 또한 암컷과 수컷의 결합을 모르지만 성기가 빳빳하게 일어서는 것은 순수한 기운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굳이 노자의 시작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인생은 모두 이렇게 순수한 갓난아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소년기를 지나 배움을 쌓으면서 갓난아기 때의 순수함을 더욱 쌓기보다는 욕심을 쌓기 시작하고 하나보다는 둘을 원하게 된다.
본격적인 6·2지방선거철에 접어들면서 항간에 흉흉한 소문이 무성하다. 그것이 진실인지 소문인지는 검찰에서 밝히겠지만 난 왜 이런 소문들이 생기게 되는지 그 근원적인 이유를 생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굳이 무위자연의 도를 역설한 노자의 도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중요한 그 하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도덕경에서는 하나라는 말이 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굳이 철학적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하나 즉 일의 의미만 깊이 되새겨 보고 소중히 다룰 줄 알기만 해도 더 많은 즐거움과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그것이 전부인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하나,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옛말에 진정으로 사귀는 친구 하나만 있으면 인생이 성공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 하나를 소중히 여길 때 둘이 있고 셋이 될 수 있다는 뜻일테고 반대로 그 하나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를 때 둘이 있을 수 없고 셋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에서 출발해서 더 큰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있어 그 하나는 국민이어야 할 것이고 시장에게 있어 그 하나는 시민이어야 할 것이다. 기업에 있어 그 하나는 고객이어야 할 것이고 종교에 있어 그 하나는 믿음이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다 나름대로 중요한 하나를 부여잡고 최선을 다한다.
근간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수환 추기경의 사후 고인에 대한 애도가 지역을 넘어, 나이를 넘어, 당을 넘어, 종교를 넘어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물결을 이루며 모여든 것은 그들이 살아서 소중히 지녀왔던 평화와 원칙과 소신에 대한 그 하나를 존경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모처럼 마음을 내어 아내와 함께 농협 하나로 마트에 들러 장을 본다. 물건이 싱싱한지 가격이 비싼지 싼지 무심하기 그지없는 아내는 오늘 일터에서 심하게 마음 상한 일을 끊임없이 토해내다가 저만치서 반갑게 인사하는 아이를 보더니 금새 얼굴이 환해진다.
아마 아내에게서 공부를 배우는 아이였나 보다. 그러더니 내내 아이들에 얽힌 희로애락을 신명나듯 얘기를 풀어낸다. 아내의 단순함에 웃음이 나지만 그것은 지금 현재 아내의 진지한 '하나'다.
장을 보고 나서며 생각해본다. 하나로 마트에 있어 아니 농협에 있어 그 하나는 무엇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