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필자는 거제시의 연혁 중 오류, 고려 때 거제현민들이 가조현으로 강제 이주된 사건 등을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고대∼전근대 사이 다뤄야 할 거제시의 역사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지면의 한계가 큰 벽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필자가 집필한 '둔덕면사'(2002), '하청면지'(2009) 등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주기를 바란다.
이번 필자는 거제시의 근·현대사 중 '거제시지'나 여타 면지에서 다루지 않는 사실(史實)들을 연재해 보고자 한다.
일부 향토사가나 일부 시민들은 근대 혹은 현대사를 이야기 하는 것을 우려 또는 싫어한다고 한다. 왜일까. 아픈 역사가 많아서, 아니면 일제의 침략사건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친일과 반일 혹은 민주와 반민주의 역사 때문일까.
역사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그래서 역사학자는 자신이 선택한 사관에 입각해 균형 감각을 가지고 사실(史實)을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남들이 싫어한다고, 상대방의 압력이나 두려워서 말하지 않고 다루지 않는다면 사관(史官)의 생명을 저버리는 짓이다.
앞으로 연재할 거제시의 근·현대사는 알려져 있으나 왜곡된 사실,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다. 근대 거제의 시작은 거제부에서 1895년(고종 32) 5월 29일 거제군으로 변경되면서다.
먼저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참다운 목민관이 누구인지 따져보자. 그럼 어떤 군수들이 거제를 다녀갔는지 간략하게 짚어보자.
종신유배자와 봉급차압 당하는 거제군수
조선시대 말과 대한제국기의 거제군수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757년(경덕왕 16) 처음으로 거제군이 되었다가 1,138년만에 군으로 개칭되었다. 여기서 1914년 거제군이 통영군으로 통폐합되기 직전까지의 거제군수들을 살펴보자.
먼저 초대 군수로 부임한 이원록(李建祿)은 1896년(건양원년) 2월 7일 발령을 받아 11일후 2월 18일∼1897년 5월 5일까지 근무했다. 이원록은 특별한 과실이나 징계 없이 근무한 군수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조현(李祖鉉) 군수는 1897년 5월 10일∼1898년 8월 16일까지 근무했다. 이조현은 무과에 합격해 육군 부위, 훈련원 제1대대 부관, 친위 제1대대 중대장을 지낸 인물로 공주사령관에서 경산군수로 있다가 거제군수로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