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부는 바람
오월에 부는 바람
  • 거제신문
  • 승인 201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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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원/칼럼위원

▲ 황수원/(사)경남박물관 협외회장·거제박관장
올해는 유난히 날씨가 불순하다. 오뉴월이면 봄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추위와 더위가 교차된다. 게다가 때를 구분하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이 봄바람이라고 하기에는 무척도 매섭다.

어디 꽃잎을 떨게 하는 그 바람만 그러하겠는가! 사람의 맘을 떨게하는 6월 2일의 그 선거바람은 또 어떠한가!

거제라는 한정된 공간만을 두고 본다면 맘 내키는 표를 던지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그러나 국지적인 판단만으로 표를 던질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결심을 서성이게 만든다.
돌이켜 보면 진보와 보수의 대립구도는 해방이후 계속 이 땅에 정치적 자양분을 공급하면서
정치적 결단의 순간마다 선택을 강요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과 북이 갈렸고, 우리의 선거역시 지금 당신은 보수냐 아니면 진보냐의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진보와 보수의 역사적 발생배경이나 언어적 개념의 차이는 뒤로하고 몇 가지 정책을 표면에 내세우고는 당의 명칭만으로 보수와 진보 중 양자를 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나는 절망한다.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진보이며 무엇을 위한 보수인지에 대한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진보를 표방하거나 보수의 대표인양 자처한다.

50년을 넘게 이어온 보수와 진보의 논란이 정치적 발전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보수는 자유 민주주의이고 진보는 사회주의이며 나아가 공산주의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말일까? 양자가 융합된 유럽의 철학(가령 앤소니 기든스의 '제3의 길'과 같은 고찰)은 이 땅에 뿌리내려서는 안 되는 것일까?

한 민족이면서도 이 세기의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말이 결코 자랑스럽지도 않으면서, 사상과 이념의 대결의 장으로 남아있는 오늘의 현실이 우리의 정신과 철학의 위태로움을 보여주는 것 같아 나는 절망한다.

북한은 학문적인 의미에서의 공산주의 국가도 못된다. 다만 지독한 개인독재와 무력으로 통제. 유지되는 그렇고 그런 집단이다. 국가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는 근대의 정치사상의 프리즘을 통해 보면 단순한 의사(疑似)국가일 뿐이다.

남한이 북한을 모델로 할 필요나 가치가 전혀 없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양식있는 우리 국민이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 정치관이 친북좌파라는 등식이 아직도 유효한 현실로서 우리 사고의 경직성과 역사적 경험의 잔재로 남아 오늘의 이 정치판에 끼어든다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보수의 개념역시 철저한 자본주의의 논리와 자유민주주의라는 19세기의 교과서적인 이념으로만 치부하는 것도 대단히 오류일 수 밖에 없다.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은 진보적인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은 보수적인가? 몇 가지 정책을 근거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유권자가 원하는 것들은 어느 정당에서나 어느 후보이거나 같이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집권당의 경우는 현실적으로 예산을 조달하고 집행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쉽지 않은 구석이 있고, 야당의 경우는 그런 부담이 없으니 정치적 슬로건으로서의 공약은 자유롭다.

결론적으로 그렇다. 보수를 표방하던 진보를 표방하던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당이던 민심을 쫓아가고 민심을 선도하려고 말할 뿐이다. 다만 집권당은 공약에 대한 책임을 다음번의 선거에서 바로 판단받기 때문에 함부로 내걸 수가 없다.

만약 필자가 공약을 보고 정당이나 후보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공약의 달콤함 보다는 실현 가능한 공약을 내는 후보나 정당을 택할 것이다.

이 오월의 바람은 요상하고 현란하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선택은 비교적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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